‘방역을 위해’ 다섯 글자 앞에 쪼그라든 개인의 자유
“방역이 모든 이슈 빨아들이는 블랙홀 되어선 안 돼”
#1. 개천절인 지난 3일 오전 8시 50분. 추석 연휴 중임에도 당직근무를 맡아 서울 광화문 부근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던 40대 직장인 A씨는 지하철 광화문역 출구에서 접한 광경에 깜짝 놀랐다. 경찰관이 계단을 통해 출구로 나가려는 한 고령자를 붙들고 “어디로 가시는데요” 하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이날 도심 일대에 ‘차벽’이 세워진 것으로도 모자라 행여 시위자가 광화문광장에 접근할까봐 검문까지 하고 나선 것이다. A씨는 ‘1990년대 초반 대학교 교문 앞에서 경찰이 가방 안에 뭐가 들었는지 소지품 검사를 하던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2. B씨는 최근 방역당국이 사용한 ‘단풍 방역’이란 표현을 언론 기사에서 접하고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다. 대부분 단풍 명소인 전국의 국립공원들을 관장하는 환경부는 ‘올해는 가급적 집에서 모니터로 단풍을 감상하길 바란다’는 취지의 권고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정세균 국무총리까지 나서 “단체 탐방보다 가족 단위의 소규모 탐방을 권한다”고 했다.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B씨는, 비록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서로 몸이 닿을 정도로 빽빽한 ‘만원’ 지하철 안과 단풍을 보려는 관광객들이 몰려든 국립공원 중 어디가 더 안전할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고 전세계에서 국가의 권력을 대폭 확장시켰다. 그간 대다수 시민이 절대적 가치로 여겨 신봉해 온 종교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 그리고 개인 사생활 보호의 필요성은 ‘방역을 위해서’라는 국가의 요구 앞에 사정없이 쪼그라들었다. 물론 코로나19 방역은 중요하지만 엄연히 헌법 등에 규정된 국민의 기본권 행사를 ‘방역’의 이름으로 원천 차단하려는 시도는 과연 온당한가.
◆‘방역을 위해’ 다섯 글자 앞에 쪼그라든 개인 자유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총무 박정훈)이 ‘국가의 확장과 개인의 자유’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통해 이 문제를 짚어본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방역이란 이름 아래 급격히 확장한 국가, 그리고 ‘방역이 우선’이란 논리에 밀려 유보되고 잊히는 개인의 자유를 심도있게 조명한다. 또 이런 상황 속에서 언론의 올바른 역할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세미나에선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와중에 개인의 사생활 보호, 종교의 자유, 그리고 집회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되는 현실을 다룰 것으로 보인다. 확진자 동선 공개는 코로나19 환자의 밀접 접촉자들을 빨리 파악해 감염 사례를 찾아내고 추가 감염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동선이 공개되는 확진자는 은밀한 사생활마저 만천하에 드러나는 고통에 직면한다.
일부 교회의 대면예배는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당국에 의해 ‘방역의 적(敵)’으로 지목됐다. 1주일에 한 번 교회에 모여 신앙을 공유하고 서로의 근황을 확인하는 것을 삶의 일부로 여기며 살아온 독실한 신자들은 ‘대면예배 강행=방역 방해’라는 현 상황이 몹시 불편하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방역이 모든 이슈 빨아들이는 블랙홀 돼선 안 돼”
2016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한 촛불집회,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대한 집회 등에서 보듯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는 정부에 반대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차량 행진 형태의 ‘신종’ 집회가 등장했으나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 싶어하는 집회 주최자들 입장에선 성이 안 찬다.
세미나에선 개인의 사생활 보호에 예외를 두고 또 집회·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련의 조치들이 정부나 지자체의 ‘행정명령’ 하나로 간단히 취해지는 게 과연 온당한지, 시간이 조금 덜리더라도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사법기관의 심사를 거쳐 시행돼야 하는 것 아닌지, 코로나19 방역이 정치·사회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현 상황이 과연 타당한지 등을 다룰 것으로 보인다.
감염병 창궐이란 초유의 상황에서 언론은 과연 제 역할을 다했는지,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국가의 확장과 개인 자유의 제한 속에서 언론의 사명은 무엇인지 등도 논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세미나는 오는 16일 오후 2시 30분 제주도 서귀포 칼(KAL)호텔에서 열린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와 박아란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이 주제발표를 할 예정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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