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장기근속 땐 목돈 마련 기회
중도퇴사 땐 지원 못 받는 점 ‘악용’
상사들 폭언·폭행에 성추행까지
중도해지 7580건… 1년 새 90%↑
“괴롭힘 탓 재취업 땐 재가입 허용
부당 이면계약 등 근로감독 강화를”

“상사의 수차례 폭언으로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고,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많이 느껴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사의 폭행으로 멍이 들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청년내일채움공제를 악용해 부당노역을 강제로 시키기도 했습니다.”(중소기업 근로자 B씨)
정부가 지원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에 가입했다가 사용자로부터 갑질 피해를 봤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중소기업으로의 인력 유입과 장기근속을 위해 도입된 청년내일채움공제가 ‘노예계약’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내일채움공제 악용 제보 사례’를 11일 발표했다.
청년내일채움공제 사업은 중소·중견기업 취업 청년에게 목돈 마련의 기회를 주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중소벤처기업부가 운영하는 사업이다. 근로자가 정해진 기간 근속하며 일정 금액을 적립하면 기업과 정부가 돈을 보태주는 제도다.

하지만 가입기간 중 근로자가 스스로 퇴사를 한 것으로 기록될 경우 정부의 지원금을 받지 못해 돌려받는 금액이 크게 줄어든다. 일부 회사들이 이 같은 제도 때문에 쉽게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청년 직장인의 사정을 악용해 폭언과 괴롭힘, 성추행 등의 갑질을 하고, 임금을 삭감·동결한다는 것이 단체의 주장이다.
단체는 “중기부가 파악한 부정·부당사례는 시행 2년이 지나도록 단 한 건도 없었다. 하지만 단체에는 2020년 한 해에만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23건이 들어왔다”며 “청년들은 정부의 청년내일채움공제를 노예계약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 등으로 청년내일채움공제를 중도 해지하는 가입자도 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중기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청년재직자의 청년내일채움공제 중도해지 건수는 758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90.4% 증가했다. 올해 해지율은 30.2% 수준이다.
단체는 문제 해결방안의 하나로 청년내일채움공제 재가입 기준 완화를 제안했다. 퇴사 후 재가입할 수 있는 사유를 확대하고, 기간·횟수 제한을 확대 또는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직장 내 괴롭힘과 같은 노동자 본인의 귀책사유가 아닌 불가피한 사유로 재취업한 경우라면 이 제도의 혜택을 다시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는 사업장이 휴·폐업하거나 임금체불, 권고사직 등의 경우에만 재취업을 전제로 1회에 한하여 6개월 이내 재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단체는 또 회사가 정부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이면계약을 체결하거나 노동자에게 허위신청을 강요하는 등 부정수급을 조장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정부의 철저한 관리·감독을 주문했다. 노동부의 시정명령을 받은 적이 있거나 부정수급이 적발되는 사업장은 향후 정부의 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페널티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도 고려할 것을 제안했다.

직장갑질119 김한울 노무사는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월급만으로 목돈 마련이 어려운 청년들에게 그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인데, 실질적으로는 괴롭힘 등 불법적인 상황에서조차 청년들이 자유롭게 퇴사하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되고 있다”며 “재가입 여건을 완화하고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