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까지 나온 기술 가운데 가장 수명이 긴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카이스트(KAIST) 생명화학공학과 김희탁(사진.나노융합연구소 차세대배터리센터) 교수 연구팀은 아연 전극의 열화 메커니즘을 규명함으로써 전 세계에서 보고된 모든 레독스 흐름 전지 가운데 가장 오래가는 수계(물) 아연-브롬 레독스 흐름 전지 개발에 성공했다고 5일 밝혔다.
최근 들어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전력 피크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대안으로 ESS가 각광받고 있다.
대부분의 ESS는 값이 저렴한 ‘리튬이온전지’ 기술을 채택하고 있지만, 태생적으로 발화로 인한 화재 위험성 때문에 대용량의 전력을 저장하는 용도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 2017년∼2019년까지 2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리튬이온전지로 인한 ESS 화재사고가 33건에 이르고 집계된 손해액만 7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최근에는 배터리 과열 현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수계 전해질을 이용한 레독스 흐름 전지가 주목 받고 있다. 레독스 흐름 전지란 양극 및 음극 전해액에 활물질을 녹여서 외부 탱크에 저장한 후 펌프를 이용해 전극에 공급하면 전극 표면에서 전해액 내 활성 물질의 산화·환원 반응을 이용해 에너지는 저장하는 전지다. 특히, 초저가의 브롬화 아연(ZnBr2)을 활물질로 이용하는 아연-브롬 레독스 흐름 전지는 다른 레독스 흐름 전지와 비교할 때 높은 구동 전압과 함께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고, 가격이 싸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아연 음극이 충·방전 과정에서 보이는 불균일한 돌기 형태의 ‘덴드라이트 형성’으로 수명이 짧아 상용화에는 어려움을 겪어왔다.
덴드라이트 형성의 메커니즘은 아직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김희탁 교수팀은 낮은 표면에너지를 지닌 탄소 전극 계면에서는 아연 핵의 ‘표면 확산(Surface diffusion)’을 통한 ‘자가 응집(Self-agglomeration)’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 현상이 아연 덴드라이트 형성의 주요 원인임을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이와 함께 특정 탄소결함구조에서는 아연 핵의 표면 확산이 억제되기 때문에 덴드라이트가 발생하지 않은 사실도 아울러 발견했다.
탄소 원자 1개가 제거된 단일 빈 구멍 결함(single vacancy defect)은 아연 핵과 전자를 교환하며, 강하게 결합함으로써 표면 확산이 억제되고 균일한 핵생성 또는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고밀도의 결함 구조를 지닌 탄소 전극을 아연-브롬 레독스 흐름 전지에 적용해, 리튬이온 전지의 30배에 달하는 높은 충·방전 전류밀도에서 5000 사이클 이상의 수명 특성을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지금까지 레독스 흐름 전지에 대해 보고된 연구 결과 중 가장 뛰어난 수명성능을 지닌 것이다.
김 교수는 “차세대 수계 전지의 수명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을 제시한 게 이번 연구의 성과”라며 “기존 리튬이온전지보다 저렴할 뿐만 아니라 에너지 효율 80% 이상에서 5000 사이클 이상 구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신재생에너지의 확대 및 ESS 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이주혁 박사과정이 제1 저자로 참여한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Energy and Environmental Science’ 9월호 표지논문으로 선정됐다.
대전=임정재 기자 jjim61@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