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사법부 유리천장 뚫고 약자 대변한 ‘진보 아이콘’

입력 : 2020-09-20 19:54:55 수정 : 2020-09-20 19:54:54

인쇄 메일 url 공유 - +

타계한 긴즈버그 대법관은
두번째 女대법관… ‘판사의 판사’
약자들 차별에 맞서 전향적 판결
성불평등 해소 여권신장에 기여

18일(현지시간) 별세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사진) 대법관은 27년간 미국 연방대법원을 지키며 ‘여성 최초’의 행보를 이어간 인물로, 사법부의 유리천장 혁파에 상징적 역할을 하는 등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981년 연방대법관에 오른 샌드라 데이 오코너에 이은 두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서 긴즈버그 대법관은 군사학교 여성 입학 불허 위헌 결정, 동일노동 동일임금 지급 문제 등에서 여러 차례 소수자를 대변하는 전향적 판결을 이끌어냈다. 보수 우위의 대법원에서 당당히 반대표를 던지며 명성을 쌓았다.

약자 차별에 맞서고, 다수 의견에 굴하지 않으며 소수 의견을 제시한 긴즈버그 대법관에게 미국 젊은이들은 ‘노토리어스(notorius·악명 높은) R.B.G(긴즈버그 이름의 첫글자 모음)’라는 애칭을 붙이며 응원했다. 하급심에 지침을 제시하는 명확한 의견을 남겨 ‘판사의 판사’라는 명성도 얻었다고 CNN은 전했다.

1933년 유대계 가정의 둘째 딸로 태어난 긴즈버그 대법관은 학창시절 모두가 아는 책벌레인 동시에 학교 음악대에서 금속 봉을 이용한 연기를 선보이는 ‘배턴 걸’로도 유명했다. 전액 장학금으로 코넬대에 입학해 1956년 전체 학생 500명 가운데 9명뿐이었던 여학생 중 한 명으로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갔다. 여성 차별이 남아 있던 당시에 어린 딸의 육아를 병행하는 이중고 속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뉴욕에서 로펌에 취직한 남편을 따라 명문 컬럼비아 로스쿨로 옮긴 뒤 탁월한 성적으로 수석 졸업의 영예를 안았다.

럿거스 대학의 법학 교수로 첫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는 자신의 월급이 남성 동료보다 낮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여교수들과 ‘동등한 임금’ 운동에 나서 여성 교직원 급여 인상을 이뤄냈다. 1972년에는 여성 최초로 모교인 컬럼비아 로스쿨의 교수가 됐다. 성 평등과 여성 권익 증진을 위한 변론에 열정적으로 참여했으며, 미국 시민자유연합(ACLU)의 여성 인권운동 프로젝트에서 수석 변호사를 맡아 각종 소송을 주도했다. 여러 대법원 사건에서 승소, 성적 불평등에 관한 판례를 바꾸면서 여권 신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UPI연합뉴스

긴즈버그 대법관 별세 소식에 대법원 앞에는 수백명의 시민이 촛불과 꽃, 메시지 카드 등을 들고 모여 고인을 추모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투병 중에도 암을 극복하고 계속 법원에 봉직하는 등 ‘끝까지 투사’였다”며 백악관과 모든 연방 정부 건물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는 “위축되지 않고 맹렬하게 모두를 위한 인권을 추구한 여성이었다”고 애도했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이유 '눈부신 미모'
  • 아이유 '눈부신 미모'
  • 이주빈 '깜찍한 볼콕'
  • 신은수 ‘심쿵’
  • 서예지 '반가운 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