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1970년에 펴낸 저서 ‘소비의 사회’에서 재화와 서비스의 증가에 의한 소비와 풍요로움이 인류 생태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풍요롭게 된 인간들은 지금까지 어느 시대에도 그러했던 바와 같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소비의 사회에서 풍요는 낭비를 전제로 한다. “효용이 아니라 이 낭비의 원칙이야말로 풍요의 중심적인 심리학적·사회학적·경제학적 도식”이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사물의 구입·선택·이용이 구매력 등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소비는 ‘하나의 계급제도’다.
“특정 몇몇 사람들만이 환경에 내재하는 요소들(실용적 생활, 미적 구성, 높은 교양)의 자립적이고 합리적인 논리에 접근할 수 있다는 의미의 차별이 존재한다. … 다른 사람들은 주술적인 경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즉, 사물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고 다른 모든 것(사상, 여가, 지식, 문화)에 사물로서의 가치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물신숭배적 논리가 바로 소비의 이데올로기다.”
보드리야르는 이어 “소비는 하나의 가치체계”라고 주장한다.
“소비는 기호의 배열과 집단의 통합을 보증하는 체계다. 따라서 소비는 도덕(이데올로기적 가치들의 체계)인 동시에 의사소통의 체계, 즉 교환의 체계이기도 하다. … 사람들은 모든 소비자들이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 연루되는, 코드화된 가치들의 생산 및 교환의 보편화된 체계 속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소비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의미작용의 질서’가 된다.
“재화와 차이화된 기호로서의 사물의 유통·구입·판매·취득은 오늘날 우리의 언어활동이며 코드인데, 그것에 의해서 사회 전체가 ‘의사소통’하고 서로에 대해 말한다.”
이것이 소비의 구조다. 따라서 소비사회는 “소비를 학습하는 사회, 소비에 대해 사회적 훈련을 하는 사회”다. 달리 말하면 “새로운 생산력의 출현과 고도의 생산성을 갖는 경제체계의 독점적 재편성에 어울리는 ‘사회화’의 새롭고 특수한 양식”이다.

소비사회에서 소비자는 사회적으로 고립된다. 소유라는 것이 개인주의적 경향을 지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무의식적이고 비(非)조직적”이다.
“소비자인 한에서는, 사람은 다시 고립되고 뿔뿔이 떨어져서 기껏해야 ‘서로 무관심한 군중’이 될 뿐이다(가정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 경기장 및 영화관의 관중 등). 소비의 구조는 매우 유동적인 동시에 폐쇄적이다.”
보드리야르는 소비와 관련해 “지위 및 명성의 추구는 기호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 달리 말하면 사물 및 재화 그 자체가 아니라 ‘차이’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는 사물을 기호로 파악한다.
“현대적 사물의 ‘진짜 모습’은 무엇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도구로서가 아니라 기호로서 조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는 인간관계의 상실을 불러온다. “인간관계가 - ‘기호’의 형태로 - 사회적 회로에 재투입되고, ‘기호화된’ 인간관계와 인간적 따뜻함이 ‘소비’되는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빌딩 1층 안내데스크 직원의 ‘제도화된 미소’가 그 대표적 사례다.

보드리야르는 1930년대 무성영화 ‘프라하의 학생’의 줄거리를 인용한다. 가난하지만 야심적이고 풍요로운 생활을 꿈꾸는 학생이 야망을 이루기 위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분신을 악마에게 팔아넘긴다. 학생은 소원을 이루지만 더이상 거울에 비치지 않는 것에 절망한다. 게다가 분신은 이제 거리를 활보하며 자신을 대신한다. 분신이 자신의 거울 앞을 지나갈 때 분신에게 총을 쏜 그는 죽어가면서 깨진 거울 조각에서 자신의 모습을 되찾는다.
보드리야르는 개인과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은 세계와 우리의 관계의 투명성을 나타내는데 이 모습을 잃어버리면 세계가 불투명하게 되고 또 우리의 행위가 우리에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 하나의 타자(他者)가 된다. 즉 소외된다.”
소비사회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보드리야르는 “인간이 자신의 모습과 마주 대하는 장소였던 거울은 현대의 질서에서는 사라지고, 그 대신에 ‘쇼윈도’가 출현했다”고 한다.
“거기에서는 개인이 자기 자신을 비춰보는 것이 아니라 대량의 기호화된 사물을 응시할 따름이며, 응시하는 것에 의해서 그는 사회적 지위 등을 의미하는 기호의 질서 속으로 흡수되어 버린다.”
그 결과 “소비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기호의 질서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가 바로 소비사회다. 보드리야르는 인간의 욕구를 차이에 대한 욕구로 해석한다. 사람들은 상품 즉 사물을 구입하고 사용함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명품백에 열광하는 이유다. 소비는 욕구의 체계를 만드는 생산질서와 상품의 사회적 가치를 결정하는 의미작용의 질서에 지배받는다.
보드리야르의 분석은 사회가 디지털화하면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소비사회의 정점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우리는 소비에 관한 욕망이 담긴 말을 거리낌없이 주고받는다. ‘소비의 사회’는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가 왜 갈수록 경박해지는지를 이해하게 해준다. 우리 각자의 소비 행태와 우리 사회의 작동 방식에 대해 돌아볼 기회가 된다.
박완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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