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 여자 분이 170이었으면 지금 190정도는 될 것 같아요. 배구선수 같은…”
“여성이 170㎝라고요?”
“저 때 여성 표준키가 얼마였어요?”
지난 3일 문화재청의 경주 황남동 120-2호분 발굴 현장설명회를 유튜브로 지켜본 사람들의 주요한 관심 중 하나는 피장자의 키였다. 발굴을 담당한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170㎝의 여성으로 추정했다. 출토유물의 구성, 배치 등이 근거였다.
댓글로 표현된 놀람과 의문은 키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외모, 체격을 판단하는 주요한 기준 중 하나인 데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전근대 여성의 평균키와는 차이가 너무 크다는 데서 비롯됐다.
120-2호분에 묻힌 이 신라인은 정말로 역대급의 키다리 여성이었을까.
◆170㎝(?)…뼈없이 키를 추정하는게 가능한가

120-2호분은 피장자에게 입힌 장신구 일체가 확인돼 주목됐다. 170㎝란 추정치도 여기서 가능했다. 조사 결과 머리에 씌운 금동관의 중앙부에서 발에 신긴 금동신발의 뒤꿈치까지의 간격이 176㎝였다. 1500여 년 전 매장 당시의 장신구 배치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가정 아래 현대 여성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훤칠한 신장의 추정치를 제시한 셈이다.
그런데 발굴된 지 얼마되지 않아 보다 정밀한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긴 하지만 키를 추정한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의견이 있다.

피장자의 키를 판단하는 기본적인 자료는 뼈다. 동아대 김재현 교수는 “특히 중요한 것이 장단지를 이루는 대퇴골이다. 이밖에 정강이의 경골, 팔꿈치 위쪽의 상완골 등 팔, 다리의 길쭉한 뼈가 활용된다”며 “인골이 나오지 않았다면 피장자의 키를 추정할 수 없고, 나왔다고 하더라도 대퇴골 등의 부위가 아니라면 키를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120-2호분에서는 뼈가 발견되지 않았다. 뼈가 무덤에 남아 있는 모양을 근거로 판단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고 한다. 시신의 부패가 진행되면 뼈와 뼈를 잇는 관절 부분이 떨어지게 된다. 연결 부분이 사라지면서 분리된 뼈들은 간격이 벌어진다. 이 때문에 뼈만 남은 시신은 실제보다 커보이기 마련이다. 120-2호분 피장자의 키를 추정한 근거인 부장 유물이 배치 역시 이런 과정에 따라 달라졌을 수 있다.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도 장식 유물들이 120-2호분과 비슷하게 착장 당시의 모습을 유지한 채 발굴되었으나 피장자의 키를 추정하는 근거로는 활용되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10년 개최한 기획특별전 ‘황남대총’의 도록에서 “황남대총에 묻힌 마립간은 금동관 끝에서 대형 허리띠드리개 끝까지 181㎝였다”며 “비교자료를 찾기 위해 여러 무덤의 발굴기록을 뒤졌으나 장신구의 간격으로 키를 추산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았다”고 밝혔다.
◆신석기부터 조선까지 여성의 평균키는 약 150㎝
현대 여성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은 훤칠한 체격인지라 놀라지만 사실 ‘그 정도야’라며 코웃음을 칠 신라 여성들이 있다. ‘삼국유사’는 22대 지증왕의 부인 키를 “7자 5치나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자태가 풍만하고 아름다웠다”는 28대 진덕여왕은 “키가 7척이나 되었고, 늘어뜨리면 무릎 아래에 닿을 정도로 팔이 길었다.” 1자, 1척을 약 30.3㎝로 보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하면 2m가 넘어 거인이라 할 만한 덩치들이다. 남성으로서는 실성왕, 지증왕, 법흥왕, 진평왕 등이 유명하다.
물론 문헌 속 기록은 왕이나 왕비의 권위, 신성성 등을 강조하기 위한 과장되고, 신화화된 표현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신라인을 비롯한 우리 조상들의 실제 키는 어느 정도였을까.

지금까지 발굴된 뼈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여성의 평균키는 140㎝ 후반에서 150㎝ 초반이었다. 2006~2007년 경남 창녕군 송현동 15호분 발굴에서 전신의 뼈가 온전하게 남은 순장 시신 한 구 나와 복원을 했는데, ‘송현이’란 이름을 갖게 된 이 여성의 키가 153.5㎝다. 남성의 경우에는 160㎝ 초반인 것으로 조사됐다.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수 천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평균키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은 흥미롭다. 국립김해박물관이 2015년 고인골을 주제로 한 전시회에서 제시한 자료를 보면 여성은 153.2㎝(신석기), 150.5㎝(삼한), 154.2㎝(삼국), 148.9㎝(조선)이다. 남성은 같은 시대 순으로 162.8㎝, 163.1㎝, 163.0㎝, 161.1㎝이다. 이는 각 시대 일본인의 평균키보다 1∼5㎝ 크다. 키가 작아 일본인을 ‘왜’라고 불렀다는 조선시대의 인식이 실제와 어느 정도 부합함을 보여준다.
김재현 교수는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크게 변하지 않은 건 유전적인 요인만 놓고 볼 때 우리 민족의 평균키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며 “더 클 수 있는 유전적 요소들이 현대에 들어 급격하게 영양상태가 좋아진 환경적 요인과 결합하며 10㎝ 이상 커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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