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정(三政)은 조선시대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의 틀이다. 전정(田政)·군정(軍政)·환정(還政). 각각 세금·병역·구휼과 관련된 제도다. 순조 11년, 1811년에 터진 홍경래의 난. 이후 50여년간 70곳에서 일어난 민란은 바로 삼정의 문란에서 비롯된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병전육조에 이런 글을 남겼다. “중종 때 군적이 있는 자에게 베(군포·軍布)를 거두는 법을 시행했는데…. 아전의 농간과 수령의 착취로 백성은 이전보다 네 갑절이나 많은 부담을 짊어진다. 죽은 자에게 군포를 걷고, 태어난 지 3일 만에 군적에 올리고, 강아지 이름을 군안에 올려 군포를 걷는다. … 이를 고치지 않으면 백성은 모두 죽는다.”
군정의 폐단을 적은 글이다. 백골징포(白骨徵布), 황구첨정(黃口簽丁)…. 순조 3년에 벌어진 ‘양경(陽莖) 사건’. 아이가 태어난 지 사흘 만에 군적에 오르고, 소를 빼앗긴 강진의 백성은 자신의 양경을 잘랐다. “이것 때문에 이런 곤욕을 치른다”며. 군정이 이 지경이면 전정과 환정이 어땠을까. 보나마나다. 조선 패망의 그림자는 이때 벌써 드리워지고 있었다.
삼정을 문란시킨 건 누구일까. 높은 자리에 앉은 자들이다. ‘목민심서’ 율기육조의 글, “흰 도포를 한 점 먹물로 더럽히면 끝내 다시 씻을 수 없다.” 윗사람이 부패하면 아랫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른 채 분탕질을 한다는 얘기다.
추미애 법무장관의 아들 서모씨의 군대 휴가 문제가 시끄럽다. 21개월 군 생활 동안 쓴 휴가는 58일. 그중 11일은 특별휴가, 19일은 병가다. 병가를 간 뒤 부대에 정식복귀하지 않은 서씨. 보좌관이 병가 연장을 지원 장교에게 물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군정 문란의 데자뷔”라고 비판한다. 전방 사단에서 휴가 한 번 나오기도 힘든 많은 병사들은 어찌 바라볼까.
사실이라면 추 장관의 흰 도포에는 먹물이 묻었다. 당 대표·법무장관이 먹물을 묻혔으니, 낮은 직급의 공직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혹시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나도 그 정도 먹물쯤이야.’ 하기야 도포에 먹물 묻힌 사람이 법무장관뿐이겠는가. 권력형 비리 의혹을 받는 수많은 사건들. 모두 먹물로 뒤범벅된 사건들이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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