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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도자예술마을에 ‘예쁨주의보’ 발령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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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8-16 10:00:00 수정 : 2020-08-14 23: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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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즐겁고 공예체험까지 이천도자예술마을(예스파크)·사기막골 도예촌 GO! / 모던한 공방·예쁜 카페들 가득 / 도예가 설명과 손길 얻어 ‘작품’ 도전 / 흙덩어리 뚝 떼어 물레질하며 인생 배워 / 골목마다 예쁜 생활자기···예술 향기 뿜뿜

 

이천도자예술마을(예스파크)

물레를 돌린다. 빨라도 느려도 안 된다. 너무 빠르면 제멋대로다. 너무 느리면 죽도 밥도 아니다. 예쁘게 만들려고 여기저기 건드리다가는 ‘폭망’한다. 오로지 물레를 밟는 발놀림의 일정한 속도, 그리고 두 팔을 로봇처럼 겨드랑이 꼭 붙인 채 미세하게 움직이며 모양을 잡아가는 손가락만 필요할 뿐. 도예가의 설명을 그대로 따랐지만 처음이니 물레질이 아주 서툴다. 그래도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제법 고운 선의 그릇 모양이 만들어진다. “에이, 생각보다 쉽네”라고 방심하는 순간, 멋대로 놀린 손가락에 엉망진창이 돼 버린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실패한 흙덩이를 무심하게 뚝 떼어내고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으니 연습 없는 인간의 삶보다 낫다. 그릇 만들러 왔다 인생을 배운다.

 

이천도자예술마을(예스파크)
이천도자예술마을(예스파크) 골목풍경

#이천도자예술마을에 ‘예쁨주의보’ 발령

 

경기도 이천 하면 쌀밥과 도자기가 떠오른다. 임금이 즐겨먹던 이천 쌀밥은 입이 호강하니 먹방시대에 제격이다. 하지만 도자기는 좀 고리타분하지 않을까. 도자기는 뭐 거기서 거기고 갖고 싶어도 값이 너무 비싸니 ‘그림의 떡’이다. 수도권 여행지이지만 “쌀밥과 도자기 빼고 이천에 뭐 볼 것 있어”라며 선뜻 발걸음이 향하지 않는 이유다. 아니다. 볼 것 많다. 더구나 올여름 이천에 ‘예쁨주의보’가 내렸다. 예술로 가득한 이천도자예술마을 예스파크(藝’s Park) 덕분이다. 특히 예쁜 그릇만 보면 흥분해서 지름신이 내리는 주부라면 이천 여행을 아예 피하시라. 지갑이 통째로 열릴 것이다.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다.

 

카페웰콤 포토존
카페웰콤 2층

이천시 신둔면으로 길을 잡는다. 주소는 도자예술로. 도자기의 본고장 이천답다. 이천도자예술마을 예스파크에 도착하니 여기가 도자마을인가 싶을 정도로 깔끔한 거리 모습이 인상적이다. 모던한 공방 건물과 예쁜 카페는 마치 서울 청담동 거리에 들어선 듯하다. 설봉산성에서 제육볶음으로 요기하고 ‘뷰맛집’으로 소문난 베이커리 카페 웰콤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2층 계단 앞에서 자연스럽게 발이 멈춰진다. 눈처럼 하얀 벽과 백자, 바위, 그리고 가지가 멋대로 뻗어나간 고목. 벤치에 앉으면 모든 것이 하나의 작품처럼 녹아든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생샷 명소로 등극했다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카페웰콤
케페웰콤 쌀밥 빙수

 

에티오피아 버카 구디나 원두로 내린 커피가 일품이다. 초콜릿, 캐러멜, 군고구마의 복합적인 향이 비강에 오래 머문다. 시그니처 메뉴는 옹기 티라미수와 쌀밥 빙수. 재미있는 설명이 붙어있다. ‘바닥에 카라멜소스와 누룽지가 붙어 있으니 박박 긁어 드시오. 윗부분만 먹으면 우유맛만 나니 그것은 그대의 탓이오”. 누릉지는 딱딱하니 치아를 조심하란다. 빙수에 스토리를 잘 담았다. 2층은 통창과 백자로 꾸며져 여행자들이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시원하게 즐기고 있다.

오르골카페
오르골카페

오르골카페는 신기한 것들로 가득하다. 흔들면 반짝이며 눈이 내리는 워터볼 오르골에서 인기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유진초이가 아끼던 디스크형 오르골까지 세상의 모든 오르골을 모아놓은 듯하다.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두 손을 맞잡은 연인들 위로 눈이 쏟아지는 디지털 멜로디는 너무나 예뻐 순간 지갑을 열 뻔했다. 피아노 앞에서 무릎 꿇고 청혼하는 ‘그대를 위한 세레나데’, ‘러블리 디너’ 등 수많은 멜로디가 끊임없이 돌아가 마치 동화 속에 온 듯하다. 이곳에서는 직접 오르골을 만들 수 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오르골이라니 생각만 해도 근사하다.

 

#물레질하다 인생을 마주하다

 

시간이 많지 않아 다음을 기약하고 라쿠 소성 기법 도자기를 만드는 화목토 도예연구소로 향한다. 일본에서 ‘라쿠야키’로 부르며 한자는 락소(樂燒)다. 불을 때면서 즐거움을 만끽한다는 뜻인데, 도자기를 만드는 방법이 독특하다. 저화도 유약을 사용해 2시간 정도 가마에서 구우면 섭씨 900도 정도에서 유약이 녹는다. 박종환 연구소장이 도자기를 끝내자 5m 거리에서도 후끈 열기가 느껴진다.

 

라쿠소성 도자기 제작 과정
라쿠소성 도자기

이때 도자기는 급랭하며 유약에 크랙이 생긴다. 이를 다시 왕겨, 톱밥, 나뭇잎이 담긴 통에 넣자 활활 불이 붙는다. 왕겨가 타면서 크랙 사이로 연(燃)이 스며들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무늬가 탄생한다. 조선도공 장차랑(長次郞)이 임진왜란 무렵 일본으로 건너가 처음으로 라쿠 소성 기법을 선보였고, 지금도 일본에서 대를 이어 전해진다. 화목토 도예연구소에서는 다양한 도자기를 만드는 강의가 진행된다.

 

이천도자예술마을(예스파크) 옹기
이천도자예술마을(예스파크) 주전자 도자기 작품

이제 직접 도자기를 직접 빚을 시간. 도예공방 들꽃마을로 가는 길은 거리마다 예술로 넘친다. 거산도예 앞마당에는 항아리가 가득하다. 뚜껑을 열어놓은 항아리는 전날 내린 많은 비가 그대로 담겨 푸른 하늘과 구름이 맑게 투영된다. 다양한 모양의 항아리 사이에 서면 근사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전국에 물폭탄이 연일 쏟아진 장마철에 이런 날씨는 보석 같은 행운이다.

 

세라기타

거리는 깔끔하게 정돈돼 걷는 맛이 좋다. 수국이 지면 핀다는 원추형 나무 수국이 활짝 폈다. 운치 있는 자작나무도 어우러져 도자마을을 더 예쁘게 단장하고 있다. 길가에 놓인 주전자, 화분 등 다양한 도자기는 여름 여행의 추억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사진의 훌륭한 소품이 돼준다. 대형기타로 외관을 꾸민 세라기타 건물도 인기 높은 포토존이다.

 

들꽃마을 도자기 빚기 체험

들꽃마을로 들어서자 도예가 최현숙씨가 반갑게 맞는다. 매주 화요일 저녁 ‘인생을 빚는 도자교실’이 진행되는데,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설계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이란다. 물레 앞에 앉으니 커다란 고령토 덩어리를 뚝 떼어준다. 설명대로 따라했지만 네모난 흙덩어리를 타원형으로 길쭉하게 위로 뽑아 올리기조차 쉽지 않다. 꼼짝도 안 해 도움을 요청했다. 도예가의 손길이 닿자마자 순식간에 흙덩어리가 위로 솟구치더니 어느새 그릇 모양이 됐다. 아주 신기한 마법이다. 도예가는 “처음에는 누구나 다 그렇다. 시간이 좀 필요하다”며 토닥인다.

 

들꽃마을 도자기 빚기 체험

도예가의 도움으로 욕심을 부려 커다란 면기를 만들었다. 여름에 즐기는 메밀국수를 담아 먹을 요량이다. 들꽃마을에서 유약을 발라 예쁘게 구워 집으로 보내준다.일행 중 한 명은 욕심이 없나 보다. 엄지손가락 크기의 아주 작은 그릇을 만들고 있다. 알고 보니 소주잔이다. 평소에도 소주를 즐기는 그에게 여기까지 와서 소주 타령한다는 핀잔이 쏟아진다. 하지만 조그만 소주잔조차 내 맘대로 만들어지지 않으니 마치 인생을 빚는 것 같다.

 

이천도자예술마을 대표 김순식 작가의 갤러리 ‘더 화’
라우프로덕트 서핑보드 제작

#생활자기가 예술이 되는 사기막골 도예촌

 

2018년 문을 연 예스파크에는 도자, 공예, 미술, 음악, 조각 사진 등 공방이 가득해 지루할 틈이 없다. 200여곳에서 작가 350여명이 활동 중이다. 예스파크 마을 대표 김순식 작가의 갤러리 ‘더 화’는 꼭 들러봐야 한다. 청말, 백말로 꾸민 도자그림 작품이 벽면에 가득 걸렸다. 샤갈의 마을에 온 듯 독특한 작품세계에 푹 빠지게 된다. 라우프로덕트에서는 서핑보드를 만드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나만의 독특한 서핑보드를 제작하고 싶은 이들의 공간이다.

 

사기막골 도예촌
사기막골 도예촌 가마공방

 

예스파크가 도자기 빚기 체험을 하고 예술공방을 즐기며 골목골목 걷기 좋은 곳이라면, 사기막골 도예촌은 예쁜 그릇 쇼핑의 천국이다.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도자기 전통시장으로 청자, 백자 등 예술작품부터 모던한 생활자기까지 모두 만날 수 있다. 60여개 공방이 몰려 있어 왼쪽 언덕에 주차하고 천천히 걸어서 둘러보면 된다. 골목마다 공방의 생활자기들이 가득하다. 걷다 보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생활자기가 나타난다. 가마공방에서 발길이 저절로 멈춰졌다. 눈 내린 숲의 나무 같은 머그잔이 강렬하게 유혹한다. 생활자기가 아니라 예술작품 같다. 산토리니 바다를 닮은 머그잔도 너무 예뻐 2개를 구입했다.

사기막골 도예촌 알천도예
알천도예

알천도예에 들어가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릇에 눈꽃이 활짝 피었다. 유약을 결정으로 표면에 남기는 독특한 기법으로 나뭇잎 모양 그릇을 구웠다. 이동준 도예가는 유약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아연은 흰색, 코발트는 푸른색, 구리는 온도에 따라 붉은갈색에서 보랏빛과 푸른빛까지 만들 수 있다니 신기하다. 영롱한 색에 사로잡힌 바람에 그만 지름신이 내렸다. 그냥 가면 후회할 것이 뻔하니 큰 접시와 작은 접시 5개를 사고 뿌듯한 기분으로 사기막골을 나선다. 

 

이천=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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