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원 “재판부 고생 많겠다… 잘 마무리했으면”

이동원(사진) 대법관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재판과 관련해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70년이 넘는 한국 헌정사 그리고 사법사상 현직 대법관이 법정 증언석에 앉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법관은 “유쾌한 일은 아니다”고 솔직한 소감을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부장판사 윤종섭)은 11일 이 대법관을 증인으로 출석시킨 채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건의 속행공판을 진행했다.
임 전 차장은 2016년 3월 이민걸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을 통해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이던 이 대법관한테 행정처 문건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두고 검찰은 이 대법관이 맡고 있던 어느 사건 재판에 행정처가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였다는 입장인 반면 임 전 차장이나 이 전 기조실장은 “단순한 재판 참고자료였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이 대법관은 자신이 심리 중인 사건과 관련해 행정처로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듣게 된 상황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그는 “판사는 일단 다른 사람이 사건에 대해 접근해 오면 긴장하고 침묵하게 된다”고 말했다. “재판에 참고하라”는 이 전 기조실장의 말에 특별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만 이 대법관은 이 전 기조실장으로부터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의 말은 듣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 대법관은 행정처가 일선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과 관련해 해당 재판부에 문건을 전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소신도 밝혔다. 그는 “재판부가 행정처에 ‘검토한 자료가 있느냐’고 물을 수는 있지만, 행정처에서 거꾸로 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다"라며 "모든 것은 재판부 의도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 것이지, 외부에서 재판부에 접근하는 것은 절대로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증인 신문 말미에 재판부는 이 대법관한테 “현직 대법관으로서 법정 증인석에 앉아 증언을 하는 소회가 어떠십니까”라고 물었다. 재판장 윤종섭 부장판사는 올해 50세로 사법연수원 26기다. 반면 이 대법관은 57세로 연수원 17기다. 까마득한 후배가 대선배에게 어찌 보면 ‘결례’가 될 수 있는 질문을 던진 것이지만 이 대법관은 솔직하고 담담하게 소회를 밝혔다.
“대법관으로서 증인석에 앉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겠지만, 형사재판을 해본 사람 입장에서 누구든지 증거로 제출된 서면의 공방이 있으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증인석에 서서 ‘이 사건의 무게 가운데에서 재판부가 많이 고생하시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잘 마무리해서 좋은 재판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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