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해외정보망도 구축 안돼
수사현실 모르는 졸속안 비판
국정원 수집 구축한 대공정보
그대로 넘겨 줄지도 의문 남아

당정청이 30일 발표한 국가정보원 개편안은 국정원이 국내정치에 관여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방안 등은 수사현실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졸속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이 만만찮다. 사정기관들 사이에선 “간첩 수사는 이제 하지 말란 뜻”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대공수사 이관 두고 논란
가장 큰 논란거리는 국정원 대공수사 기능을 경찰로 이전하는 부분이다. 기존엔 국정원이 국내외에서 수집한 정보를 총괄 분석한 후 검찰 공안부, 경찰청 보안 파트 등과 협조해 간첩을 검거하는 구조였다. 문제는 국정원이 하던 대공수사를 경찰 보안국이 제대로 떠맡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경찰 보안국은 김영삼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는 가급적이면 대공수사를 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다. 보안 파트 출신의 경찰 관계자는 “경찰의 보안(대공수사) 조직은 전체적으로 침체된 상황”이라며 “수십년 동안 안 하던 일을 갑자기 하라고 하면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우리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국내외를 오가는 간첩을 추적하기 위해선 해외정보망이 절실한데 경찰에는 대공수사를 위한 해외정보망이 거의 구축돼있지 않다. 경찰의 국제범죄수사 소속이나 해외파견 직원들은 주로 해외교민 연루 범죄 등 대공수사와는 전혀 다른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또 국정원은 그간 북한 내부 첩모망과 탈북자들을 상대로 방대한 대공정보를 수집해 ‘빅데이터’를 관리하고 있다. 국정원이 대공수사를 포기한다고 해서 이 대공정보는 과연 경찰에 그대로 넘길지 의문이다. 공안수사를 전담한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북한에 포섭된 외국인이 신분을 위장한 후 국내에 들어온 경우에 국정원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간첩은 국내외 정보를 모두 총괄 수집한 후 잡아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치권에선 이번 국정원 개편안이 아이로니컬하다는 뒷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등 경찰의 ‘남영동 대공분실’(현재 보안수사파트)이 저지른 국가범죄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경찰에게 대공수사 기능을 대폭 강화하려는 건 이상하다는 것이다.

◆국정원, 해외 정보역량 축적해야
이번 국정원 개편안은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주도하는 만큼 그대로 입법화될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 내에서도 그동안 국내정보 파트의 비중이 너무 컸다는 자성론도 있다. 또 해외에서 신분을 숨기고 활동하는 ‘블랙 요원’들이 실질적으로 위험에 처하고 온갖 고생을 하는데도, 정작 권력의 과실은 국내정보 파트 직원들이 가져간다는 내부 비판 여론이 상당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국내 지부장들이 사실상 지역유지처럼 행세한다는 비판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국정원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정보요원(Intelligence Officer·국내 정보관)들을 모두 철수하는 등 새로운 모델을 정립하려고 노력해왔다. 국정원은 정보요원들도 내부에서 재교육한 후 모두 재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직까지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뚜렷한 청사진이 없다는 내부 지적도 흘러나온다. 한때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를 배우자는 흐름도 있었지만, 직원들 사이에선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얘기가 아니다”라는 푸념이 나돌았다. 대공 분야를 담당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국정원 국내정보가 너무 막나간 측면도 있지만 이번 개편안은 국정원의 대공수사 역량을 크게 약화시킬 것”이라며 “면밀한 재검토와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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