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20여년간 인기리에 방송된 유명 개그 프로그램이 종영되었다. 그 프로그램에 ‘두 분 토론’이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유행어가 큰 인기를 얻었었다.
물론 개그 프로그램이니 토론자 두 명이 옥신각신 논쟁하다가 뜬금없이 ‘소는 누가 키우나?’라고 반박하는 것이 웃음포인트였다. 당시에는 그냥 웃고 넘긴 유행어였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요즘의 과학기술인재 수급 상황과 잘 매치되는 유행어였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기술은 새로운 도전이라는 미래지향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새로운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이 현 상황의 돌파구를 마련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처럼, 과학기술인재 육성은 더 좋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의 과학기술정책이 제대로 된 ‘소’를 키우고 있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요즈음 각종 과학기술정책 심의나 연구개발과제 평가를 가보면 감염병 대응이 들어간 과제 계획서가 많다.
시급성 때문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 키워드가 없던 정부 계획을 보기 힘들었고, 그 전에는 빅데이터(Big data)가 주요 핵심 키워드였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요즘 가장 ‘핫’하다는 감염병 전문가나 인공지능 전문가들을 만나보면, ‘내 평생 내 전공분야가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을지 몰랐다’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감염병의 경우 지금과 같은 글로벌 팬데믹 상황이 거의 전무했으며, 인공지능도 머신러닝이라는 기술적 돌파구가 나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최근 수요가 높아지면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인기 있는 분야의 전문가는 늘 부족하다는 것이다. 즉, 과학기술인재의 수요·공급 미스매치(mismatch)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연구비 쏠림현상과도 연결된다는 점이다.
몇년 전 국내 모 대학교 화학공학과에서 화학공정분야 교수를 신규 초빙하는데 해당 분야를 전공한 전문가가 없어서 충원하지 못했던 일이 있었다.
왜 그런가 살펴보니 2000년대 초부터 바이오 분야가 높은 정책적 관심을 받으면서 많은 화학공학 전공자들이 바이오로 박사학위를 받는 쏠림현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전공집중 현상이 대학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은 첨단분야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겠지만 산업현장은 기존에 개발된 기존기술을 활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대형공장을 운영하는 장치산업의 경우 전통적인 기술을 이해하고 발전시킬 공정 전문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학에서의 전공 쏠림현상은 산업현장의 전문가 부족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화학공학 분야에서 바이오 전공 쏠림이 심화하면서 많은 화학 회사들이 전문인력 채용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새로운 분야가 각광을 받게 되고 유망하다고 판단되면 좋은 인재가 몰려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몸에 좋다고 한 가지 영양분만을 섭취하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 사회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 늘 미래는 우리가 예측하는 것보다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과학기술정책과 예산투입이 너무 트렌디하게 흘러서는 안 된다. 적어도 공적 영역에 있어서는 예산의 편중된 투입으로 과학기술 세부전공의 쏠림현상이 심화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가 제대로 된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다.
강산이 열 번 변하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묵묵히 우리 미래사회가 필요로 할 수 있는 ‘소’를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
안준모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기술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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