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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힘겨운 말더듬이들이지만… 그들이 보내는 위로에 세상은 아름답다"

입력 : 2020-07-07 15:00:00 수정 : 2020-07-07 13:3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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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준의 '내가 말하고 있잖아'
정용준 작가의 장편 ‘내가 말하고 있잖아’는 열네 살 말더듬이 소년이 언어교정원에 다니며 언어적, 심리적 장애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민음사 제공

“나는 잘해 주면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다. 누군가 한 손을 내밀어주면 두 손을 내밀고, 껴안아 주면 스스스 녹아버리는 눈사람이다.”

 

아이는 본래 이랬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 빠짐의 정도가 깊어서 사랑으로 인한 상처가 깊다. 첫사랑은 11살 때 만난 부반장이었다. 하지만 두 달여간의 짝사랑이 쳐다보지 말라는 모멸찬 반응과 함께 끝나면서 아이는 마음을 꽁꽁 닫았다. 그리고 굳게 다짐한다.

 

“속지 마. 냉정한 마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 웃게 만든 다음 울게 만들 거잖아. 줬다가 뺏을 거잖아.”

 

정용준의 장편 ‘내가 말하고 있잖아’(민음사)는 상처 입지 않기 위해 누구도 좋아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소년이 마주하는 이상하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그린다.

 

소년은 말을 더듬는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기도 한다. 친구는 “넌 왜 사냐? 쓸모없고 말도 못하고 친구도 없고 늘 괴롭힘만 당하잖아. 왜 살아?”라고 묻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상의 많은 사람이 소년을 배척한다. 수근거리고, 불쌍한 듯 쳐다보며 손가락질한다. 

 

삶의 결정적인 하자가 되어버린 말더듬증을 고치기 위해 찾아간 곳 언어교정원. 소년과 비슷한 힘겨움을 안고 사는 사람들로 가득한 그곳은 “고장 난 사람들만 모아 둔 창고 같은 곳” 같기도 하다. 이내 쓰러질 것 같은 할머니, 얼굴이 빨간 남자 어른, 허공에 타자를 치듯 쉴 새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는 청년…. 

하지만 그곳에서 소년은 자신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을 느낀다. “정말로 괜찮다, 괜찮다, 말해 주는 것 같은 좋은 눈이었다.” 마음의 온기는 소년을 달래고, 격려하는 손을 통해 직접 전달된다. 소년과 같이 말을 더듬는 한 아저씨는 연신 등을 두들겨 준다. 따뜻한 시선과 맞물리는 할머니의 손은 유독 인상적이다. 

 

“할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원장은 물끄러미 내 쪽을 바라봤다. 이상한 시선이었다. 나도 아니고 할머니도 아닌 정확히 말하며 내 머리에 올려진 할머니의 손을 보고 있었다.”

 

말더듬증은 결핍의 표시이자 삶에 힘겨움을 더하는 장애임에 분명하지만 소설은 그 모습 그대로 괜찮기도 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 소년의 언어교정을 이끌어주는, 한때는 말을 더듬었던 원장은 “다 고쳤냐”는 소년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이상하게 편한 사람, 더듬는 모습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 앞에서는 더듬어.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까. 더듬는 모습 그대로도 괜찮으니까. 아마 무의식조차 아무 노력도 안 하고 자연스럽게 말하고 싶나봐.”    

 

그리고 “다들 어느 정도는 말더듬이들이야”라고 덧붙인다. 

 

언어교정원 사람들의 도움으로 경찰서에 끌려가는 곤경을 벗어난 소년은 자신을 향한 그들의 마음을 잊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그들과 관련된 “어떤 기억도 희미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일기를 쓰고, 그것은 이야기가 된다. 말더듬이 소년은 그렇게 자신의 언어를 갖게 되고 ‘내가 말하고 있잖아’라고 자신 있게 외친다. 

 

시인 이제니는 이 소설이 “어떤 고독하고도 단단한 마음들을 떠올려 보게 한다. 그 마음들로 인해. 그 마음들과 함께. 그 마음들 곁에서. 이상한 위로를 받는 동시에 말 없는 응원을 보내고 싶어지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의 작고도 큰 미덕이라 하겠다”고 추천의 말에 적었다.

 

매일이 힘겨울 수밖에 없는 소년과 그의 동료들이지만 그들이 보내는 위로와 응원에 세상은 좀 더 아름답고, 따뜻하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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