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기력감, 상실감, 허탈함, 우울, 슬픔…. 지난 4월 반려견 ‘뽀뽀’를 떠나보내고 유혜리(38·여)씨의 하루는 매일이 그랬다. 멍하니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아, 내가 또….’ 예전 같았으면 반려견에게 밥을 먹이거나 산책 나갔을 시간만 되면 특히 더 그랬다.
“12년 동안 함께 했거든요. 처음엔 사진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도 그립고 울적할 때면 예전에 함께 찍은 사진을 봐요.”
그에게 뽀뽀는 누구 못지않게 소중한 가족이었다. 번듯한 장례식은 물론 얼마 전 49재도 치렀다. 지금 그는 뽀뽀를 닮은 인형을 만들고 있다. 업체에 의뢰하려다가 생각을 바꿔 직접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공예 자격증도 따기로 했다. “이렇게나마 달래보는 거죠. 지금도 많이 보고 싶네요.”
만약 동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를 어떻게 평가할까. “무례한 인간들의 사회”라고 하지는 않을까. 모두가 유씨와 같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안타깝게도 반려동물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법만 봐도 그렇다. 반려동물 사체는 장례업체를 통하지 않을 경우 생활·의료폐기물로 버려지거나 불법 매장되는 길밖에 없지만 동물 장례업체는 전국에 40여곳뿐이다.
반면 동물 판매업체는 4000곳이 넘는다. 한마디로 요람만 있고 무덤은 없는 사회인 셈이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팸족(pet+family)’과 업계 관계자들에게 반려동물 장례문화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초라한 반려동물 장례문화
사실 처음 반려동물을 들일 때부터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떤 계기, 이를테면 반려동물이 질병을 얻거나 부상을 당했을 때 비로소 죽음은 ‘현실’로 다가온다.
“얼마 전 ‘탄이’가 크게 아팠거든요.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이번에 처음 해봤어요. 뉴스를 찾아 보니 국내에 변변한 업체도 없는 것 같고, 땅에 묻자니 불법이라고 하고, 어딘가에 유골을 흩뿌리는 것도 싫고…. 박제해서 데리고 있어야 하나 생각까지 들더라구요.”
6년차 ‘집사’ 김모(30·여)씨는 얼마 전 꽤 진지하게 반려동물 문화에 대해 고민해봤다고 한다. “TV에서 연예인들이 키우는 것 보면 예뻐보이니까 일단 집에 들이고, 그러다 마음에 안 들면 버리고, 그러다 또 외로우면 다시 키우고…. 장례문화란 게 있을 수 없는 환경인 거죠.”
실제로 5조원으로 추정되는 국내 펫코노미(pet+economy) 시장 규모에 비해 반려동물 장례 산업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정부 허가를 받은 합법 업체가 전국에 44곳밖에 없다. 수년 전부터는 ‘떴다방’식으로 운영하며 유골을 볼모로 추가금을 요구하는 불법 업체가 기승을 부리는 통에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 일도 있었다. ‘반려동물 인구 1000만명 시대’에도 돌봄 문화는 제자리인 셈이다.

“전에 아는 분이 기르던 반려동물이 죽으니까 ‘사체를 생활폐기물 봉지에 넣어 쓰레기장에 버렸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내심 놀랐죠. ‘가족’이라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요?” 취재 중 만난 직장인 정모씨의 말은 지금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2018년 한국펫사료협회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반려동물 죽음 유경험자 140명 중 불과 24.3%만 장례 업체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저도 업계에선 “현실은 더 낮을 것”이라고 본다. 한 장례업체 관계자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많아졌으니 장례에 대한 수요도 당연히 많아졌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다”며 “경영난에 허덕이는 곳이 많다”고 귀띔했다.
◆“입양하면 끝까지 책임져야”
반려동물 돌봄 문화가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나라들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1899년에 반려동물 공동묘지를 만든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우리처럼 외곽 지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공동묘지가 마련돼 있고 사람들도 수시로 찾아가 추모를 한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지난해 사람에 준하는 장례법회와 천도재가 많아진 점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만엔(약 223만원) 넘는 높은 비용에도 수요가 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성의를 다해 돌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일단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서울 강동구는 얼마 전 한 반려동물 장례업체와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지역 사회에 바람직한 장례문화를 확산시키려는 목적에서다. 주민 대상으로 장례비용을 크게 할인해주고 추모 음악회와 펫로스 증후군 극복강연 등을 하고 있다.
최근 젊은 세대에서는 죽은 반려동물을 추모하는 SNS 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거나, 반려동물 초상화, 인형, 조각, 피규어 등 굿즈를 만드는 모습이 눈에 띈다. 반려동물의 생전 모습을 몸에 새기거나 사체 화장 후 나온 유골분으로 ‘루세떼(추모보석)’ 액세서리를 만들어 몸에 차고 다닌다는 사람들도 있다. 한 반려동물 초상화 업체 관계자는 “요즘엔 당사자 직접 의뢰보다 지인이 위로할 목적으로 의뢰하는 경우가 많아진 듯하다”고 말했다.
강동구 유기동물 분양센터 ‘리본’ 관계자는 “‘동물에 무슨 돈을 쓰느냐’고 핀잔 주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사회 전반적으로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라면서도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장례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인식은 아직 자리 잡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반려동물 상품 아닌 가족… 부족한 장례인프라 구축 제대로 된 이별의식 정착”
“사실 저는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2년 넘게 일해 보니 왜 ‘가족’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지난 2일 서울 강동구 유기동물 분양센터 ‘리본(RE:BORN)’에서 만난 정지윤(사진) 주무관의 말이다. 그가 몸담고 있는 리본은 2017년 11월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개관한 카페형 유기동물 분양시설로, 그동안 330마리 넘는 유실·유기견을 가족의 품에 돌려보냈다. 얼마 전엔 지역사회 반려동물 장례문화 정착을 위해 전문업체와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반려동물의 유기와 장례, 언뜻 다른 듯하지만 그는 결국 같은 문제라고 보았다. 책임감의 문제란 얘기다. “가족을 버릴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릴 수도 없는 거고요. 쇼핑하듯 동물을 입양하다 보니 책임감이 옅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말 그대로 ‘상품’처럼 여기는 거죠.” 다만 그는 이를 전적으로 반려인의 문제, 무책임의 문제로 치부할 순 없다고 말한다. 인프라 자체가 없었던 데다 반려동물을 정말 가족처럼 대하고 사랑하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거다.
최근 지역사회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일단 버려지는 동물부터가 줄고 있다. 올 상반기 강동구에서 발견된 유기·유실동물의 숫자는 185마리로, 2018년 동기 225마리에 비해 17.7%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체 유기·유실동물이 5만5830마리에서 6만3720마리로 14%가량 늘었다는 점에 비춰보면 작지 않은 성과인 셈이다. 그는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한 그동안의 캠페인과 교육이 성과를 거둔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왜 장례문화 정착이 시급할까. 그는 가장 먼저 ‘반려동물의 고령화’를 꼽았다. 반려동물의 나이가 전반적으로 상승한 만큼 더 이상 외면하거나 피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모두 한 번만 더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요. 매년 너무 많은 반려동물들이 버려지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함께여야 합니다. ‘가족’을 버리는 사회, 너무 비극적이지 않나요?”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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