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에서 대남 군사행동 계획 보류를 지시하면서 대남 적대 국면을 이끌었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의 역할 분담을 확연히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김 제1부부장이 먼저 거친 대남 비난을 쏟아내면서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이끌어가는 악역을 도맡았다면, 김 위원장은 파국을 막고 국면 전환을 맡는 ‘굿캅’을 맡은 것이다.

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대남 강경 군사행동 결정이 이뤄진다면 김 위원장이 최종 결정에 따른 책임을 지게 된다. 하지만 이날 보류 결정으로 이는 없던 일이 됐다. 결과적으로 이번 국면에서 김 위원장은 직접 대남, 대미 비판을 한 바 없이 목적한 바를 이룬 것이다. 고유환 통일연구원장은 이와 관련해 “성과를 못 내게 되면 김정은도 리더십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충격을 주고 국면을 전환하는 것은 (북한의) 전통적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김 제1부부장이 그간 낸 대남 비판 담화는 김 위원장의 지시가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김 위원장의 ‘굿캅’, 김 제1부부장의 ‘배드캅’ 역할을 나눈 것은 남북관계의 총체적 파국 속에서도 최고지도자의 해결사 역할을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놓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미 김 제1부부장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대남전단 살포 계획 발표 등으로 의도한 국면을 모두 만들어냈다는 판단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 남매의 역할 분담은 올해 초부터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김 제1부부장이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와중에도 김 위원장은 직접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다.
김 제1부부장이 악역을 맡고 이를 계기로 리더십을 과시하면서 김 제1부부장의 위치와 권력을 대내외에 각인시키는 계기도 됐다. 김 제1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를 비판하는 담화를 낸 뒤에는 북한 사회 각계에서 이를 최고지도자의 교시처럼 이행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당 통일전선부와 군 총참모부가 나서 김 제1부부장의 담화 이행 지시를 언급하고 노동신문 등에 북한 간부의 주민들의 김여정 담화 실행 결의가 실렸는데, 이는 최고지도자에게만 가능한 예우라는 평가가 나왔다. 김 제1부부장이 북한 내에서 2인자, 혹은 후계자나 김 위원장의 국정운영 동반자의 위치까지 와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다만 김 제1부부장의 위상 강화는 당초 제기됐던 김 위원장의 건강악화설과는 관련이 없다는 분석이 더욱 힘을 얻게 됐다는 평가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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