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사건에 대해서는 형사소송법상 재심 대상이 아닌 ‘면소’ 판결을 받아도 재심을 받을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처음으로 나왔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20부(부장판사 강영수 정문경 이재찬)는 박정희 유신정권에 저항하다가 구속기소된 김덕룡(79·사진)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이 재심 청구 기각에 불복해 낸 즉시항고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김 이사장은 1979년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시절 ‘YH 무역 여공 신민당사 농성사건’ 백서를 발간했다가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지만, 긴급조치가 해제됨에 따라 면소 판결을 받았다. 김 이사장은 헌법재판소가 2013년 긴급조치 9호를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을 근거로 “당초부터 헌법에 위배돼 효력이 없는 법령에 대한 것이었다면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며 재심을 신청했다.
1심 재판부는 형사소송법 제420조가 ‘유죄의 확정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을 근거로 면소 판결을 받은 이 사건에 대한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면소란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범죄 후의 법령 개폐로 형이 폐지됐을 때 등 다른 이유로 형사소송을 종료하는 판결로, 유죄판결의 선고가 없었던 것과 같은 효력이 있지만 무죄와는 다르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이 사안처럼 당초에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9호 해제로 면소 판결을 선고받은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재심 대상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는 국민의 기본권을 심하게 침해해 위헌성이 명백하므로, 이를 위반한 공소사실로 기소돼 재판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국가가 권리와 명예를 회복해 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에 따라 법원은 무죄판결을 선고해 그 사람의 행위가 범죄가 아니라고 선언해 주고 명예가 실질적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권리구제의 폭을 넓혀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면소는 법원이 실체 심리에 들어가지 않고 형사재판을 종결하는 형식재판”이라며 “피고인은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고 기소됐음에도 실체 심리를 통해 죄가 되지 않는다는 직접적인 판단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청윤 기자 pro-ver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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