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요즘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에게 밀리는 것으로 나타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지지층인 흑인과 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특히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서 촉발한 인종차별 반대시위가 민주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자 흑인 노예를 해방한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공화당원이란 점까지 들어가며 흑인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오클라호마주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로서 유세전을 펼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 판세가 너무나 불리하게 돌아가자 비판을 무릅쓰고 대규모 집회를 강행한 것이다.
◆“공화당은 평등·정의의 당, 링컨의 당”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을 “자유, 평등, 그리고 정의의 정당”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우리(공화당)는 에이브러햄 링컹의 당이고 법과 정의(LAW AND ORDER)의 당”이라고 외쳤다. 공화당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트럼프 대통령 말처럼 링컨은 공화당 소속으로 미국 제16대 대통령(재임 1861∼1865)을 지냈다. 다만 당시의 공화당은 지금의 공화당과는 성격이 달랐다. 1850년까지 미국은 상공업이 발달한 북부에 기반을 둔 휘그당과 농업이 발달한 남부에 기반을 둔 민주당의 양당 구도였다. 링컨도 원래 휘그당 소속 정치인으로 출발했다.

흑인 노예에 대한 잔혹한 착취와 차별이 사회 문제로 비화한 가운데 노예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농업, 그리고 농장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민주당은 노예제 폐지에 반대했다. 반면 휘그당은 찬반이 엇갈려 당론을 못 정했다. 이에 분노한 링컨 등 진보주의자들이 1854년 휘그당을 탈당해 만든 것이 공화당이다.
공화당은 1860년 대선에서 링컨이 당선되며 처음 대통령을 배출했고 이후 몰락한 휘그당을 대신해 민주당과 양당 구도를 형성했다. 링컨은 남북전쟁(1861∼1865)에서 북부를 승리로 이끌었고 흑인 노예를 해방시켰다.
한마디로 공화당은 ‘평등’과 ‘정의’를 추구하는 진보 정당으로 출범했고 그 선봉에 링컨이 있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을 ‘평등과 정의의 당’으로 규정하고 흑인 노예를 해방한 링컨을 치켜세운 건 이런 맥락에서다.

◆미국 흑인들은 왜 민주당을 지지할까?
여기서 의문 하나가 떠오른다. 흑인 노예를 해방한 링컨 대통령은 공화당 소속인데 왜 오늘날 미국의 흑인들은 공화당을 외면하고 민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할까. 이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공화당과 민주당의 색채가 차츰 변한 것과 관련이 있다.
공화당은 링컨 대통령이 흑인 노예를 해방한 인연도 있고 해서 19세기 후반까지는 흑인한테 유리한 정책을 많이 폈고 그래서 흑인들 사이에서도 공화당 지지가 우세했다. 보수적인 남부에 기반한 민주당은 흑인들의 표심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미국이 고도의 상공업 사회로 진입한 1920∼1930년대 들어 바뀌었다. 공화당이 갈수록 상공업자들과 유착하며 ‘경제적 자유’만 강조하는 쪽으로 변한 반면 민주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출현해 ‘뉴딜’ 정책 등으로 서민들의 이익을 대변했다. 대다수가 서민인 흑인들이 민주당 지지로 돌아서기 시작한 것이 이때다.
1960년대 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두 민주당 대통령이 잇따라 집권하며 흑인들의 정치적·사회적 권익 신장에 앞장선 것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존슨 대통령이 1964년 공공장소에서의 인종차별을 금지한 민권법, 이듬해인 1965년 흑인 및 소수인종의 자유로운 투표를 보장하는 투표권법 제정을 차례로 주도했다. 그 뒤 미국에서 흑인들은 거의 대부분 민주당 지지자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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