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천 물류센터 화재와 유사한 사고는 재발할 수 있다. 관계부처 장관은 이번 대책 실행에 직을 건다는 자세로 임해달라.”
정세균 국무총리는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재하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4월 말 38명이 숨진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가 12년 전 40명의 사망자를 낸 이천 냉동창고 화재와 ‘판박이 인재’라는 지적이 이어졌고, 정부의 감시·감독 책임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져서다. 실제 정부는 2008년 냉동창고 참사 이후 세 차례의 화재안전 대책을 내놓았지만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 등 대형 화재참사는 보란 듯이 재발했다.
정부는 이 같은 ‘악순환’을 끊기 위해 이날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국무조정실, 법무부, 소방청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건설현장 화재안전 대책’을 발표했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그간 정부는 주택, 고시원 등 완공된 기존 건축물을 주된 대상으로 대책을 추진했으나, 이번 대책은 시공 중인 건설현장을 중심으로 세웠다”고 말했다. 작업공정이 수시로 변화하고 화재·폭발 등 다양한 위험요인이 잠재된 건설현장부터 안전대책이 마련돼야 근원적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대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건설현장 안전에 대한 기업과 경영인의 책임을 배가시키는 내용이다. 정부는 처벌을 강화하지 않으면 비용 절감을 위해 노동자의 안전을 경시하는 관행을 근절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우선 올해 1월 시행된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김용균법은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근로자 사망 시 가중처벌 규정을 신설했고 벌금형을 기존 1억원에서 10억원까지 상향했지만, 막상 산안법 위반사건에 대한 법원의 양형기준이나 검찰 구형기준에 반영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 장관은 이에 지난 3일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장을 만나 산재사고를 개인 과실이 아닌 기업범죄 차원에서 접근하고 기업 벌금형에 대한 양형기준을 신설토록 건의했고, 김 위원장은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검찰 구형기준 강화와 관련해선 이날 브리핑에 참석한 전철호 법무부 공공형사과 검사는 “대검찰청 외부 태스크포스(TF)에서 구형기준 상향 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고용부 차원에선 다시 한 번 산안법 개정에 나설 방침이다. 고용부는 지난달부터 법인과 경영책임자 책임 강화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추진 중이며, 결과를 토대로 경영책임자에게 사업장 안전관리에 대한 보고 의무를 부과하거나 과징금 제도 등을 통해 법인에 대한 경제적 제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법무부는 대형 참사에 대한 법정형 상향 등의 내용이 담긴 ‘다중인명피해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해 올해 안에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전 검사는 “현재 대형 안전사고에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우 대부분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처벌하고 있는데, 법정형이 5년 이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고 가중을 하더라도 최대 7년6월 이하 금고에 처할 수밖에 없는 그런 부당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공공·민간공사 모두 적정 공사기간 산정을 의무화하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에 나선다. 계획·설계 단계에서 전체 및 작업별 공사기간을 산정하고, 전문가 안전성 검토를 무시하는 등 무리한 공기 단축을 지시할 경우 형사처벌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밖에 이천 물류창고와 같이 건설현장에서 가연성 물질을 다루는 작업과 용접 등 화기 작업은 동시에 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또 건설 자재의 화재안전 기준을 강화해 모든 공장·창고 건설현장의 화재안전 기준을 ‘난연’ 이상으로 하고 샌드위치패널을 마감재로 사용할 경우 ‘준불연’ 이상의 성능을 확보하도록 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준불연 샌드위치패널은 섭씨 700도에서 10분 정도의 대피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는 샌드위치패널 심재를 불연재인 유리섬유로 단계적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세종=이동수 기자 d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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