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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의공감산책] 속죄양이 되지 않으려는 책임회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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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6-15 22:42:09 수정 : 2020-06-15 22:4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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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에 책임전가 급증 / 교육계선 일선에 결정 떠넘겨 / 문제발생 땐 희생양 찾기 분주 / 이기적 본능 사회전반에 퍼져

드디어 종강이다.

26살 처음 대학 강단에 선 이래 가장 힘들었던 학기였던 것 같다. 한 한기 내내 비대면으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적막한 연구실에 앉아 반응 없는 컴퓨터의 무표정한 스크린만 쳐다보고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강의였다. 화상강의에 들어온 수강생들은 몇 명만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신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가리고 내 목소리와 얼굴만 보고 있을 뿐이다. 컴퓨터의 카메라를 켜게 되면 자신의 현재 주변 환경이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들릴 수밖에 없다. 혼자만의 개인 공간에서 몇 시간을 조용히 강의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닐 수 있다. 그런 학생들 처지를 고려해 굳이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카메라를 켜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끄덕거림,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웃음소리가 많이 그리웠다. 학생들의 존재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 한 학기였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 심리학

이번 학기 동안 느낀 것이 또 하나 있다. 시작은 개강 시기 결정이었다. 2월 중순부터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개강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던 시점이었다. 결국 2월 말 교육부가 개강 시기를 개별 대학에 일임했다. 감염과 방역에 대한 정보가 가장 많은 상급기관인 교육부만 바라보고 있던 대학당국은 갑자기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대학들은 서로 눈치만 보면서 아무도 섣불리 나서려 하지 않다가 결국 몇몇 학교의 결정을 보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대부분 2주 연기를 결정했다.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아프리카의 누떼가 떠올랐다. 누떼는 매년 건기가 되면 풀을 찾아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초원을 떠나 케냐의 마사이 마라 국립공원으로 고달픈 이주를 할 수밖에 없는데 가장 위험한 난관은 국경에 있는 마라강이다.

이 강은 강폭이 넓고 수심도 깊은 데다 급물살 속에 나일악어가 우글대다 보니 그야말로 죽음의 도강일 수밖에 없다. 수십만 마리의 누떼는 강가에 도착한 후 아무도 섣불리 도강을 시도하지 못한 채 며칠을 허비한다. 결국 용기를 낸 한 마리가 도강을 시도하면 기다렸다는 듯 모든 누가 한꺼번에 강에 뛰어든다. 진화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의 ‘이기적 군집(selfish herd)’ 현상의 일환이다. 튀면 죽을 수 있으니 집단 속에 묻혀 가는 게 생존확률이 높다.

감염이 좀 잦아들자 조심스럽게 교육부가 대면수업을 할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지만 어느 대학도 섣불리 이를 결정하지 못하다가 결국 교수들에게 결정권을 넘겼다.

기말고사를 앞두고도 대면 시험이냐 비대면 시험이냐를 가지고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교육부는 대학 당국에 결정을 떠넘기고 대학 당국은 교수들에게 떠넘겼다. ‘불확실성 회피’ 본능에 따라 교수들은 당연히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 대부분 비대면 수업과 비대면 시험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책임질 일은 타인에게 전가하는 현상이 은연중에 확산되고 있다. 사전적 책임 회피나 전가(diffusion of responsibility)는 인간의 보편적 심리다. 만약 자신이 결정한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자신의 과오를 인정해야 하는 반면 타인이 의사결정을 할 경우에는 손가락질하고 비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사결정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이러한 현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아무도 의사결정의 주도권을 쥐려 하지 않는다.

사전적 책임회피 현상은 사후적으로 결과가 잘못될 경우 짊어져야 할 책임의 크기가 클수록 더 강해진다.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이에 대해 책임질 희생양을 찾는 ‘희생양 신드롬(scapegoat syndrome)’이 강한 경우 더욱 두드러진다. 속죄양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죄책감에서 해방되는 현상을 말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30명의 폭군이 정치를 장악해 나가면서 민심이 동요되자 가장 대표적인 소피스트였던 소크라테스를 희생양으로 삼아 독미나리를 먹였던 사건이 한 예다. 루이 16세 때 계속된 사치로 인한 국고 낭비로 민중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오스트리아 출신에 미모로 질시의 대상이 된 마리 앙투아네트를 희생양으로 전락시켜 버리기도 했다. 최근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자 31번 확진자, 용인 66번 확진자 등 슈퍼확진자를 낙인찍어 힐난하거나 특정 집단, 특정 지역을 비난하는 것도 이러한 속죄양 심리이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속죄양을 통해 씻김굿을 하는 문화가 정립되면 모두 책임을 회피하고 떠넘기려 하는 속성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사회가 혼란스럽고, 미래가 불확실하고, 은근한 불안감이 사회 전반에 지속되고 있을 때 이런 속죄양을 찾고자 하는 심리는 더욱 강해진다. 그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본인만 살아남으려는 이기적 생존 본능이 사소한 개인적 문제부터 거시적 사회문제로까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는 것 같다. 권한에 따른 책임을 지는 사회가 공정하고 미래지향적 사회라면 이러한 희생양 문화부터 종식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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