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창녕에서 ‘지옥’과도 같은 가혹한 학대에 시달리다 목숨을 걸고 도망친 9살 여자아이의 의붓아버지(계부)가 경찰 조사에서 “정말 죄송하다”며 “선처를 바란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체포 전 소환 조사 당시엔 대부분 혐의를 부인했으나 이번엔 일부 혐의를 시인했다고 한다.
창녕경찰서는 13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약 9시간30분 동안 이번 사건 피의자인 계부 A(35)씨를 조사했다. A씨는 2017년부터 최근까지 의붓 딸 B(9)양을 지속적으로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지속적인 폭행뿐만 아니라 집을 나가려 하는 B양에게 ‘지문을 없애야 한다’며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으로 손가락을 지졌고, 물이 담긴 욕조에 가둬 숨을 못 쉬게 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쇠사슬로 B양의 목을 테라스에 묶어 놓고 자물쇠로 잠가 이동을 못하게 하는가 하면, 하루에 1끼만 주는 등 ‘고문 수준의’ 학대를 했다.

A씨는 지난 4일 소환조사 때와 달리 이날 조사에선 일부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장시간 이어진 조사에도 별다른 동요 없이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A씨는 연신 죄송하다면서 경찰에 선처를 구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일부 혐의를 인정했으나 정도가 심한 학대는 부인했다”고 전했다.
조사를 마친 A씨는 경남 밀양에 있는 유치장에 입감됐다. 경찰은 14일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한편, 함께 B양을 학대한 친모 C(27)씨는 지난 12일 응급입원했던 기관에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해 경남의 한 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C씨는 정밀 진단이 끝나면 2주가량 행정입원을 거쳐 조사를 받게 된다. 수 년 전부터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C씨는 지난해부터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아 증세가 심해졌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경찰에 조사를 연기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앞서 A씨는 이날 오전 10시55분쯤 경찰에 연행되면서 포토라인에 섰다. 검은 모자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반소매 티셔츠에 검정 트레이닝복 바지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연행 내내 고개를 푹 숙였다. A씨는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굳게 입을 다물었다. 경찰은 애초 그를 불구속 입건했으나 출석요구에 불응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 체포영장을 발부해 신병을 확보했다. 체포영장 발부시 48시간 안에 구속영장이 청구돼야 한다. A씨는 B양 외 다른 자녀들에 대한 법원의 임시보호명령에 반발해 자해를 시도해 입원한 바 있다.

B양은 지난달 29일 오후 6시20분쯤 잠옷 차림에 어른용 슬리퍼를 신은 채 창녕의 한 도로를 뛰어가다가 한 시민에 의해 발견됐다. 그날 B양은 거주지인 4층 빌라 베란다 난간을 통해 비어있는 옆집으로 넘어가 맨발로 도망친 것으로 조사됐다. B양은 평소 긴옷으로 상처를 가리고 다녀 담임 교사와 이웃 등이 학대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발견 당시 B양은 온몸에 멍이 들어 있었고, 머리가 찢어져 핏자국이 남아 있었으며 손가락에는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고 한다. B양은 A씨와 C씨로부터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했다고 털어놨다.
지난 11일 건강을 회복해 아동쉼터로 옮겨진 B양은 현재 불안해하던 모습이 사라졌으며, 쾌활하게 지내는 등 심적으로도 많이 안정된 모습이라고 한다. 경남아동보호전문기관의 한 관계자는 B양이 쉼터에서 새로운 옷이나 인형 등을 받고 기뻐했다고 전했다. B양은 놀이치료 등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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