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한 아이(8)가 하늘로 떠났다. 동생 손을 잡고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의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여 세상과 이별했다. 급작스러운 사고로 엄마 아빠 등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영 헤어지게 된 아이는 하늘에서도 많이 아플 듯하다. 같은 참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자기 이름까지 달아 만들어진 법을 놓고 세상이 시끌시끌해서다. 심지어 그 법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한 엄마 아빠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까지 있으니. 이 아이는 고(故) 김민식군이다.
지난 3월 25일 시행된 ‘민식이법’(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을 놓고 과잉처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법은 운전자가 스쿨존에서 차량 제한속도(시속 30㎞ 이하)를 지키면서 전방 주시 등 어린이 안전에 유의해 운전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의무를 다하지 않아 13세 미만 어린이를 죽거나 다치게 한 운전자는 이전보다 훨씬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어린이가 사망하면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 다치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3000만원 벌금에 각각 처해진다. 이는 음주나 약물 상태에서 운전하다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한 가해자와 처벌 수준이 같다.

민식이법에 부정적인 사람들이 운전자의 과실 정도와 무관하게 가혹한 처벌을 받게 하는 ‘악법’이라며 조속한 개정을 촉구하는 이유다. 지난 3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이런 의견에 35만명 넘게 동의하기도 했다. ‘아무리 조심해서 차를 운전해도 스쿨존에서 사고 내면 인생 종칠 수 있으니 억울한 운전자를 양산하지 않도록 당장 민식이법을 손질하라’는 것이다.
그러한 우려도 이해되지만 이는 스쿨존 사고 시 경위를 묻지도 따져보지도 않은 채 민식이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했을 때 생길 법한 일이다. 민식이법을 이렇게 바라보면 어떨까. 운전자들이 스쿨존을 오가는 어린이뿐 아니라 어디에서든 모든 보행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운전하는 계기로 삼자는 거다.
20여년 전 캐나다로 석 달가량 배낭여행을 갔을 때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선 말할 것도 없고, 도로변에 보행자가 서 있으면 운전자들이 차량을 잠시 세우거나 속도를 확 줄였다. 보행자의 도로 횡단 의사 여부를 확인하고 지나가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후 여행이나 출장 차 방문한 나라에서 겪어 본 교통안전 선진국과 후진국의 큰 차이점은 교통 문화와 의식이 노약자와 장애인 등 ‘교통 약자’를 비롯한 모든 보행자의 안전을 얼마나 중요시하느냐였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지난해 8월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80차례 건너는 실험을 한 결과 운전자가 차를 멈추고 먼저 지나가게 양보한 경우는 고작 9차례(11.3%)에 그쳤다. 우리나라의 인구 10만명당 보행 사망자 수(3.3명)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0명)의 3.3배나 되는 이유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런 교통문화를 바꾸지 않는 한 누구든 자신과 가족들이 끔찍한 교통사고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정부도 안전운전에 걸림돌이 되는 교통 시설과 환경 개선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제도 정비에 힘써야 한다. 불가피한 교통사고가 나도 당사자들이 억울한 경우를 겪지 않도록 말이다. 민식이가 마음 놓고 안식할 수 있도록 해주자.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강은 사회2부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