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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엽의고전나들이] 여의주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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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5-21 22:17:35 수정 : 2020-05-21 22: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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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이럴 때 여의주라도 하나 생겼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이 일기도 한다. 모든 일을 ‘뜻대로(如意)’ 하게 해주는 ‘구슬(珠)’ 말이다. 그래서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오르는 그림을 부적처럼 붙여두고는 이 피곤한 이무기 신세를 끝내고 하늘로 오르기를 염원한다.

옛이야기 가운데 그런 여의주 이야기가 있다. ‘구복(求福) 여행’으로 알려진 이 이야기의 발단은 복 없는 나무꾼 총각이다. 그가 부지런히 나무를 해다 한 짐을 만들어 놓으면 이상하게도 사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는 대체 왜 그런 불행한 일이 생기는지 알아보기 위해 서천서역국으로 길을 떠났다. 부처님께 따져볼 심산이었다. 길을 가면서 곤경에 처한 여럿을 만났는데 모두들 자기 일이 왜 안 풀리는지 꼭 물어봐 달라고 했다.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국어교육

맨 마지막으로 큰 강을 건너지 못해 쩔쩔매던 터에 이무기가 하나 나타났다. 이무기는 총각의 사연을 듣더니 자기가 왜 승천을 못하는지 부처님께 알아봐주면 강을 건네주겠다고 했다. 총각은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고 강을 건너 부처님 앞에 갔다. 부처님은 총각이 타고난 복이 없어서 그런 것이며, 이무기는 여의주가 두 개여서 무거워서 못 가는 것이라고 했다. 총각은 길을 되짚어 돌아오다가 이무기에게 일러주었다. 이무기는 총각에게 여의주 하나를 나누어주고 곧장 하늘로 올라갔다. 그 뒷이야기는 들으나마나.

문제는 여의주가 아니다. 우리의 ‘뜻(意)’이라는 게 종잡을 수 없다는 데 있다. 가령 “돈을 많이 벌어서 온 가족이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은 물론 선한 뜻이다. 그러나 무리하게 돈을 벌기 위해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들을 팽개치고, 필요 이상 많이 버느라 가뜩이나 가난한 이웃의 지갑이 더 얇아진다면, 어느 순간 우리 모두의 행복과는 멀어지게 된다. 그 간단해 보이는 소망에도 뜻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 들어 있는 셈이다. 뜻이 그렇게 두 갈래로 갈라져 상충될 때 부처님도 어쩌지 못하는 딱한 일이 벌어진다.

손오공이 여의봉을 휘둘러 세상을 호령했으나 결국은 부처님 손바닥이었다. 원하는 뜻이 고작 제힘을 과시하며 뻐겨대는 것인 한, 요괴를 물리쳐 세상을 평화롭게 하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지금 내게 여의주가 두 개 있다면, 그중 한 개는 아마도 내 몫이 아닐 성싶다. 물리쳐야 할 요괴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국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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