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대전화 카메라 렌즈 부품을 만드는 코스닥 상장사 지투하이소닉은 라임자산운용의 ‘수상한’ 전환사채(CB) 투자처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대표 곽모씨는 2018년 6월 이 회사를 무자본 인수합병(M&A)한 뒤 전 경영진과 공모해 “인수대금을 정상적으로 완납했다”고 허위로 공시하고 그해 7월 CB 100억원어치를 발행해 KB증권이 인수하게 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곽 전 대표는 이밖에도 회사 자금 186억원을 유용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지난해 1심에서 징역 5년, 벌금 5억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허위 공시를 통한 CB 100억원은 부당이득액에 포함되지 않았다. “허위 공시와 KB증권의 CB 인수 간 인과관계는 인정되지만 인수대금 전부가 허위공시로 취득한 이득액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따라 이득액은 ‘불상’이 됐고, 기본 구성요건에 대해서만 유죄가 선고된 것이다.
지난달에는 ‘황우석 테마주’라고 속여 주가를 조작한 코스닥 상장사 홈캐스트 전 최대주주 장모씨 등에게 징역형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2014년 허위 공시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수법을 통해 약 251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장씨 등에 대해 징역 1년 등을 선고한 원심을 지난달 9일 확정했다. 이 경우에도 부당이득 부분은 무죄였다. 사기적 부정거래행위로 인해 상승한 주가로 피고인들이 얻은 ‘부당한 이득’과 정상적인 공시에 따라 상승한 주가로 얻은 ‘정상적 이득’을 별개로 분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부당이득 환수는커녕… 징역형도 덜 살아
부당이득액을 정확히 산정할 수 없어 부당이득 부분에 무죄가 선고되는 사건이 늘고 있다. 가령 시세조종을 통해 주가를 띄운 뒤 팔아 수백억원의 부당이득을 올렸다 하더라도 피고인 측에서 “주가 상승이 100% 조작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 해당 주장이 받아들여져 부당이득액은 0원에 해당하는 ‘불상’으로 잡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홈캐스트 사례처럼 부당한 이득과 정상적 이득을 분리해 부당한 이득이 정확히 얼마인지 제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라임자산운용 사태나 신라젠 사건 역시 자본시장법상 불공정거래가 인정되더라도 이 같은 이유로 부당이득액에 한해서는 무죄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특히 부당이득액이 특정되지 않으면 형량이 줄어든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자본시장법에는 미공개정보이용·시세조종·부정거래에 해당할 경우 1년 이상의 징역이나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회피한 손실액의 3배 이상, 5배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 여기에 가중처벌을 적용하면 얻은 이익이나 회피한 손실액이 5억∼50억원인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징역, 50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50억원 이상의 부당이득을 올리더라도 정확한 이득액이 산출되지 않아 기본 구성요건에 대해서만 유죄가 선고되는 경우가 잦다. 100억~200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하더라도 특정이 되지 않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이 아니라 1년 이상의 징역에 그치고, 부당이득 환수도 되지 않는 것이다. 대형 경제사범들은 이렇게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투자금을 날린 소액주주나 개미들은 손실 회수는커녕 박탈감만 한없이 커지고 만다.

최근 이 같은 부당이득 무죄 선고가 증가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2018년 대검 범죄수익환수과와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가 신설되면서 관련 수사 자체가 늘었다는 해석이다.
검찰이 몰수·추징보전한 금액은 2017년 약 725억원에서 2018년 2598억원, 지난해 3376억원 등으로 대폭 늘었다. 법원이 입증책임을 강하게 요구하는 추세도 무죄 선고액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어쨌거나 주가조작범 입장에서는 현행법상 대규모 주가조작은 ‘남는 장사’인 셈이다.

◆‘남는 장사’ 원인은 입법 부재… 법 추진 왜 늦어지나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2018년 10월 자본시장법상 부당이득을 법제화하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20대 국회가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논의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정무위원회 소위원회에 잠들어 있다. 지난해 11월 정무위 소위 안건으로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이달로 임기가 끝나는 20대 국회에서는 자동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21대 국회에서 해당 법안을 재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법 개정에 속도가 나지 않는 이유로 소관 부처인 금융위원회의 소극적인 태도를 지적한다. 검찰 관계자는 “금융위에서는 (금융위 소관인) 과징금 강화와 부당이득액 산정 법제화를 패키지화해 처리하기 원하는 것으로 안다”며 “부처 간 이견이 없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금융위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개정안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국회 상임위 논의 시간 배정은 상임위 위원들의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비쟁점법안이고 해당 법안 전에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않은 법안도 많다”고 덧붙였다.
부처 간 줄다리기든, 국회의 의무 방기든 매년 수백억원 이상의 범죄수익이 고스란히 범죄자에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법안이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야, 금융위, 검찰 모두 반대할 이유가 없는데 (진척이 없어) 개인적으로 답답하다”며 “(범죄수익 환수가 되지 않아) ‘크게 한탕 하고 감옥 갔다 오면 된다’는 태도는 자본시장의 근본적인 질서를 해치는 행위인 만큼 차기 국회에서라도 관심을 가져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우중·이종민 기자 lol@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