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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 갑질'에 극단적 선택 경비원, '산재' 인정될까

입력 : 2020-05-18 15:49:23 수정 : 2020-05-20 10: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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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유사한 사례는 인정받아 / '업무상 사유'에서 비롯한 극단적 선택은 '산재' 해당

주민의 폭언과 폭력 등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원을 두고 고인을 추모하는 단체가 산업재해(산재) 신청을 추진한다. 2014년 강남구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는데 당시 해당 경비원의 사망은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입주민 갑질·폭행'에 극단 선택한 경비원이 근무하던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의 경비실. 뉴시스

‘고(故) 최희석 경비노동자 추모모임’(추모모임)은 최씨의 극단적 선택이 아파트 경비업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보고 산재 신청을 추진하고 있다고 18일 밝혔다. 추모모임에 따르면 2018년 8월부터 이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한 최씨는 지난달 21일 이중주차 문제로 주민 A씨와 다툰 뒤 A씨로부터 수차례 폭언과 폭행 피해를 입었다.

 

최씨는 괴롭힘이 계속되자 지난달 A씨를 경찰에 고소했지만, 경찰 조사를 받기 전인 지난 10일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최씨가 생전 남긴 음성유서에서 “A씨에게 맞으면서 약 먹어가며 버텼다”, “(A씨가)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일이라며 경비복 벗고 산으로 가서 맞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비가 맞아서 억울한 일 당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해달라”며 “힘없는 경비를 때리는 사람들을 꼭 강력히 처벌해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전날(17일) 경찰에 출석해 소환조사를 받은 A씨는 최씨를 폭행하거나 협박했다는 혐의를 대체로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 산재 신청을 추진하는 이오표 성북구노동권익센터장은 “주차 단속 등 감시·단속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주민으로부터 폭언과 폭력을 당했다”며 “이후 최씨의 극단적 선택은 업무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 센터장은 “유족 동의를 받아 이르면 이번주 중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유족 보상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37조에 따르면 근로자의 고의나 자해로 발생한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최씨의 사망 역시 경비원 업무를 수행하며 발생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벌어진 업무상 재해로 보고 산재로 인정받겠다는 뜻이다.

아파트 경비원 최모씨 폭행과 폭언 가해자로 지목되는 서울 강북구 우이동 소재 아파트 입주민이 18일 오전 서울 강북경찰서에서 소환조사를 마친 후 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2014년 강남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일하던 경비원 이모(당시 53세)씨가 주민에게 비인격적 대우를 받자 그해 10월7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약 한 달 뒤 숨졌다. 근로복지공단은 이씨의 사망을 산재로 인정했다.

 

당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이씨의 업무상 질병판정서에서 “업무 중 입주민과의 심한 갈등과 스트레스로 기존의 우울 상태가 악화해 정상적인 인식능력을 감소시켜 자해성 분신을 시도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업무로 누적된 스트레스가 극단적 형태로 발현돼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바,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사료된다”고 밝히며 ‘업무상 사망’으로 인정했다.

 

이씨의 산재 신청을 담당했던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권동희 노무사는 “당시 사건의 가장 큰 의의는 경비원 노동자의 감정노동으로 인한 자살이 산재로 인정된 첫 사례라는 점”이라며 “업무수행 과정에서 입주민의 괴롭힘으로 정신적 이상상태가 발생했다고 인정됐다”고 평가했다.

 

권 노무사는 “최근 숨진 최희석 경비원도 주민의 괴롭힘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2014년 사건과 구조가 동일하다”며 “주민의 폭언과 폭행으로 고인이 정신적 이상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점이 증명되면 충분히 산재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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