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일상에 준 충격은 심대하다. 2020년 1월 20일 코로나 19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후 전 국민의 삶은 뿌리부터 뒤흔들렸다. 직장인은 ‘재택 근무’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했고 손님 발길 끊긴 가게·상점은 존폐 위기에 내몰렸다. 학생들은 등교를 못했고, 배우는 무대를 잃고, 상갓집은 문상객 없이 초상을 치러야 했다. 주문처럼 강력하게 적용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역설적으로 인간이 얼마나 타인의 온기 없이는 살기 힘든 사회적 동물인지 새삼 깨닫게 하였다. 코로나 전쟁의 끝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모두는 “코로나 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매일 실감하고 있다. 코로나 19 때문에 사람 간 만남이 이전의 40% 수준으로 줄고, 70일째 이어지는 ‘언택트’ 생활로 특히 생계와 정신 건강이 나빠졌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시민 열 중 넷이 무기력과 위축감, 경계심을 호소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경험한 재택근무제
지난 2월 23일 정부가 코로나 19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올리면서 일상에 가장 먼저 찾아온 변화는 ‘재택근무’였다. 많은 직장이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재택근무를 택했다. 업무방식의 혁신방안으로 탄력근무제와 함께 자주 거론되던 재택근무제였으나 실제 대기업 등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한민국이 순식간에 광범위한 재택근무 체제로 전환한 셈이었는데 반응은 엇갈렸다. 업무에 집중이 안 된다는 하소연이 나왔으나 정반대로 높아진 업무 효율성에 놀랐다는 경험담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동안 몰랐던 일상의 기쁨을 재발견한 이도 있었다.

“예전엔 업무를 할 때 무조건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시죠’였어요. 얼굴을 봐야 안심이 되고 예의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전화로 한 번, 만나서 한 번, 문서로 한 번 등 여러 번 일을 해야 했죠. 그런데 코로나 19 이후로는 만남을 극히 최소화하다 보니 업무 효율성은 오히려 높아지더라고요. 쓸데없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중언부언하지 않을 수 있어요. 최대한 이메일 등을 통해서 업무를 진행하다 보니 내용을 먼저 머릿속으로 정리하게 되더라고요.” -직장인 송모씨(35세) -
“늘 사람들 틈에서 정신없이 있다가 혼자 하는 일상을 즐기게 됐어요. 그동안 저한테 집은 잠만 자는 곳에 불과했어요. 혼자 살다보니 밥도 밖에서 해결했고 아침에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오기 일쑤였죠. 코로나 19 초기에는 어쩔 줄 몰라 방에 누워있다가 냉동식품으로 끼니를 때웠는데,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최근엔 집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건강하면서도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이요. 요가 매트 사서 유튜브 보며 운동도 시작했어요. 혼자 있으니 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요즘엔 집에서 혼자 좋아하는 영화 틀어놓고 저녁 먹는 시간이 제일 행복해요. 그리고 인제야 주변 더러운 것들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부끄럽지만 냉장고, 세탁기, 창틀 청소와 이불 빨래 등도 생전 처음으로 해봤어요.“ - 직장인 강모씨(32세)-

재택근무 체제 반대편에는 코로나 19와 맞싸운 방역 관계자들이 있었다. 질병관리본부를 필두로 많은 보건관계자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와 군·경이 방역 최일선에서 격무에 시달려야 했으나 고생한 만큼 보람도 컸다고 한다.
“코로나 19로 집합 제한 및 금지 명령이 떨어지며 유흥업소 점검을 하느라 지난 한 달간 주말도 없이 야근했죠. 힘들었습니다. 직원들과 두 개조로 나눠 낮엔 PC방, 밤엔 유흥업소와 노래방을 다니며 하루에 30∼50개 업소를 점검하고, 금요일엔 새벽 3시까지 일했어요. 불만을 말하거나 하소연하는 업주들도 많았는데, 아예 집합 금지 명령으로 전환되니까 모든 업소가 문을 닫는 거예요. ‘영업을 못 하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이처럼 단합한다는 게 대단하다, 우리 국민성 하나는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관내 유흥업소에서 코로나 19 감염이 발생하지 않아 보람도 느꼈습니다. 지자체 공무원들은 특별휴가나 포상휴가를 받았는데, 경찰은 국가 공무원이니 그렇게 하진 못하지만 ‘추후에 치안 수요가 줄면 휴가를 주겠다’는 식의 격려라도 해주면 좋겠습니다.” -수도권 일선 경찰서 생활질서계장(52세)-

◆대세가 된 언택트
코로나 이후 일상의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의 생활화다.
“개인위생에 신경 쓰게 된 게 가장 큰 변화죠. 하루 여러 번 손 씻기 수칙대로 손을 꼼꼼히 씻습니다.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곳은 안 가게 됐어요. 그나마 규모가 작은 단골집, 한강공원에 가거나 한옥 스테이를 하루 동안 하면서 사람들을 만났죠. 또 다니던 헬스클럽이 문을 닫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집 주변의 탄천 산책길을 걷습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느꼈죠. 코로나 19 백신이 빨리 개발돼 사회가 안정됐으면 좋겠어요.” -43세 여성 프리랜서 장모씨

코로나 19 방역의 가장 중요한 전선은 3월 개학을 앞둔 각급 학교였다. 개학 연기가 이어진 끝에 온라인 개학이 시작됐다.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지만 빠르게 안정됐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더 대한민국이 온라인 교육에 준비가 된 상태였음이 확인됐다.
“아침 8시 15분, 딸과 등교준비를 시작한다. 딸 은우는 초등학교 1학년 신입생, 나는 대학교수다. 코로나 이후 우리 둘은 거의 매일 같이 붙어 지낸다. 아이 엄마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재택근무라 육아는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하는 내 차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육아가 비교적 익숙한 내게도 이렇게 ‘초장기 독박 육아’는 쉽지 않다. 다행히 등교는 3초면 끝난다. 거실 TV 앞에 9시에 맞춰 은우를 앉히면 되기 때문이다. 옆에서 잠깐 본 초등학교 1학년 화상수업은 선생님들이 너무 재밌으시다. 탈도 쓰고 노래도 불러주신다. 반성을 한다. 내 온라인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나도 탈이라도 써야하나싶다.

아이를 TV앞으로 등교 시킨 후 나도 방PC 앞으로 등교해서 이번 주 강의를 녹화한다. 헤드셋을 쓰고 모니터를 보며 주저리주저리 강의를 한다. 새로운 경험이다. 혼잣말을 이리도 오랜 시간 할 수 있다니, 스스로 감탄할 지경이다. 딸은 온라인 강의를 듣고 아빠는 온라인 강의를 녹화하는 우리 집처럼 이제 홈 스쿨 풍경은 낯설지 않다. 꽤나 효율적이기도 하다. 등하교시간도 줄이고 편안한 복장에, 수업시간도 자유롭게 조절가능하고, 무엇보다 수업시 아이의 반응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 단 한번뿐일 은우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취소된 건 너무 아쉽다. 인생 큰 기쁨으로 새 옷도 사고 만반의 준비를 끝내놓은 터였다. 그러나 허무하게 온라인으로 대체됐고 TV로 교장선생님 훈화를 들어야했다. 나 역시 아직 우리 학과 새내기들을 만나보지 못했다. 아마 대면강의가 시작되는 첫날이 그들의 입학식으로 기억될 듯하다. 온라인 강의에 많이 익숙해진 딸도 계속하는 질문이 있다. “아빠 나 학교 언제가?” 그리 수발을 들며 등교를 시켰건만 딸은 아직 학교에 가지 아니했던 것이다.” -최종한 세명대 공연영상학과 교수(46세)
남편의 재택근무와 자녀의 온라인 개학이 겹치면서 가장 힘들어 한 건 가정주부들이었다. 남편, 아이들에게 삼시 세끼를 챙겨줘야 하는 상황을 빗댄 ‘돌밥’(돌아서면 밥)이란 신조어가 유행했다. 가끔 외식이나 주문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돈이 많이 드는 데다 식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해 가급적 외식 횟수를 줄이려 하는 게 보통의 가정주부들 선택이었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역시 등교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에요. 방에서 뒹굴거리며 휴대전화나 붙들고 있던 아이들과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는 ‘이제 공부를 좀 하겠구나’싶었는데 처음 해보는 온라인 수업에 아이들보다 제가 더 힘들었어요. 출석 체크, 수업 듣기, 수업 자료 확인, 질문 올리기 등을 일일이 확인해서 중학생이 된 딸과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에게 알려줘야 했습니다. 학교에서 안내를 받아도 이해가 안 될 때 친한 엄마들에게 물었고, 그래도 안 되면 선생님에게 전화해야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아이는 내가 확인해주겠거니 하며 태평성대인데 나만 동동거리다 보면 신경질이 나서 아이랑 부딪히는 일이 잦아졌죠. 친한 엄마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다들 비슷한 상황이더라고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일단 남편의 가사분담량이 많이 늘었어요. 잔소리에 적응이 되어서인지 아이들도 숙제나 방 청소 등은 알아서 하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뭘 어떻게 하자고 의견을 나눈 건 아닌데, 어느 순간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요. 같이 있는 시간이 전보다 늘다 보니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는 걸 스스로들 느낀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해보려고요.” - 가정주부 박주희씨(43세)
강구열·권이선·박진영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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