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창력의 여고생 가수’서 ‘깊이 있는 교수·음악가’로
“슈가맨3 잘해야 80불 기대…100불 켜져 정말 ‘깜짝’
그 시절 추억과 향수를 느끼게 하는게 음악의 매력”
가수 진주(40)는 후련하고 편안한 표정이었다. 1997년 17세 나이에 ‘여고생 가수’로 데뷔한 이래 정신없이 걸어온 길이다. 종합편성채널 JTBC의 ‘슈가맨3’ 출연과 함께 그는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마침 정성을 들여온 박사학위도 통과해 자신을 짓누르던 모든 일들을 이겨내고 저 높은 하늘을 향해 번쩍 뛰어오를 준비가 모두 끝났다.
세계일보는 26일 가수로서 전환기에 들어서려 하는 진주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홀로 자축한 박사학위 졸업식
진주는 지난 20일 상명대학교 뉴미디어음악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은 ‘미국 흑인음악에 내재된 할렘 르네상스의 연속성 연구’였다.
화려한 학위 수여식은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졸업식이 취소된 탓이다.
텅빈 교정에서 박사모를 던지며 학위를 향한 오랜 여정을 자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사진과 소감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용기를 얻어가자”고 젊은 세대를 향해 당부했다. 그는 정화예술대학 실용음악과 전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열일곱 ‘해바라기’ 소녀
그는 1집 데뷔와 함께 ‘해바라기’, ‘에브리바디’, ‘난 괜찮아’를 연속 히트하며 주목받았다.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와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당시 작사·작곡·편곡에 두루 참여했다. 진주 본인도 작사 등 많은 부분에 참여한 뜻깊은 앨범이 1집 ‘해바라기’다.
“앨범 표지 촬영을 하는 날인데, 박진영 대표가 그냥 교복을 입고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하복과 동복을 다 챙겨서 갔죠. 1집 ‘해바라기’ 커버에 나온 교복은 제가 진짜 입고 학교생활하던 옷이예요”
모노톤에 해바라기를 들고 서있는 열일곱 교복 소녀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독보적인 가창력과 탁월한 고음 창법은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그가 데뷔한 시기는 1차 외환위기, 일명 ‘IMF 사태’ 때여서 그의 노래는 ‘위로와 응원을 주는 메시지’로도 소비됐다.
“행사에도 다니고, 군부대 공연도 많이 다녔어요. 온 나라가 힘들었던 시절인만큼, 제 노래를 치유와 응원으로 받아들였던 것같아요”
그런데 정작 그는 앨범이 히트하고 자신이 유명해진 사실을 당시 거의 자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때는 제가 아기나 다름없었죠. 10대 시절은 그저 바쁘기만 했어요. 스케줄 따라 여러 곳 다니느라 바빴고, 인기를 체감하기에는 너무 어렸어요. 노래에 대한 자각을 하기 전에 일정을 쫓아다니기만 했고요.”
◆ 1집 성공 이후 맞닥뜨린 벽 ‘7년 법적 분쟁’
순조롭게 출발한 가수 생활이었으나, 그 이후는 순탄하지 않았다. ‘JYP 1호 가수’의 타이틀을 뒤로 하고 새로운 소속사와 계약했지만, 이는 기나긴 법적 분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진주는 계약 문제로 7년 가까이 소송에 휘말렸다.
“그렇게 좋아하는 노래와 공연도 할 수 없게 되고, 오랜 기간 법적 분쟁을 벌이다 보니 끝이 없는 터널과 같은 느낌이었어요. 제 삶의 많은 것이 침체됐죠.”
법학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단독으로 7년 동안 소송을 하다 보니 오히려 정신이 차려지고,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사법고시학원에서 법학을 기초부터 공부했고, 나중에는 로스쿨 입시 그룹에 들어가 나보다 어린 친구들과 스터디를 진행했어요. 이 소송에서 꼭 이겨야겠다는 의지로 공부에도 탄력이 붙었죠.”
학원 수강생이나 스터디 그룹원들도 그가 가수라는 사실을 거의 몰랐다고 한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놀라더라구요. 스터디원 중 검사와 판사가 된 사람도 있고, 지금도 그 친구들과 자주 연락하는 편이에요”
그는 수험생활을 통해 공부에 대한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노력을 기본으로 깔아도 여러 가지 변수와 운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가수 생활과 달리, 공부는 자기가 노력한 만큼 성과를 보여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공부는 한 만큼 돌아오잖아요. 점수로든 성과로든 내가 노력한 만큼을 돌려줘요.”
노력과 성과에 재미를 붙인 그는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활동을 계속했다. 학생들도 그의 정체를 잘 몰랐다고 한다.
“학생들이 한 번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더라고요. ‘우리 학교에 연예인 교수가 있다며?’라고요. 그 말을 제 앞에서 듣고 제가 ‘그게 나다’라고 이야기했죠.”
슈가맨 출연을 시즌3까지 미룬 이유도 박사학위 취득 때문이었다.
“출연 섭외가 들어왔는데, 박사학위 논문에 너무나 바빠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었어요. 고맙게도 기다려주셔서 출연할 수 있었죠.”
슈가맨 시즌3 최초로 100불을 달성했지만, 정작 그는 80불을 최고 목표로 삼았다고 했다.
“요즘 친구들은 저를 잘 모르잖아요. 80불만 달성하면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100불이 나온 거예요. 정말 깜짝 놀랐고 감사했죠”
슈가맨3 첫 무대는 ‘난 괜찮아’로 시작했다. 그런데 가장 신경썼던 무대는 ‘에브리바디’라고 했다.
“‘난 괜찮아’는 어떤 나이의 가수가 불러도 괜찮지만, ‘에브리바디’는 여고생이 전하는 메시지잖아요. 박진영 선생님이 ‘그 시절과 똑같은 여고생 목소리’를 기대했어요. 지금 나는 여고생이 아닌데, 더욱 얇은 목소리로 여고생이 전하는 메시지를 재현해야 했어요. 연습도 정말 많이 했고요.”
◆ 음악인인 내가 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 시절’
자신을 속박하던 모든 것을 떨치고 성숙한 가수,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 연구를 수행한 박사로서 새로운 길을 시작하는 그는 자신의 경험과 경륜을 노래로 표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금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되고, 조금 더 편안한 상태에서 노래를 자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또 제 메시지를 노래에 투영하는 것을 깨닫게 됐고요.”
가요 환경도 그가 활동하던 1990년대 후반과는 많이 바뀌었다. ‘가요’보다 ‘케이팝’이라는 말이 더 익숙할 만큼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그는 “획일화된 가요계가 밸런스를 찾아가는 흐름이 보인다”고 말했다. 시대별, 장르별, 환경별로 한 가지 음악만 유행하던 시절에서 여러 장르가 동시에 히트하는 ‘다양성’이 자리잡았다고 요즘 가요계를 해석했다.
“미스·미스터트롯을 통해 트로트도 부흥하고, 케이팝은 전세계 시장을 노크합니다. 30대~40대는 예전과 달리 이젠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히트시키는 팬 역할을 하고 있어요. 가요 환경은 이렇듯 점차 긍정적으로 바뀔 것이라 기대합니다.”
음악이 그에게 주는 의미와, 그가 음악으로 대중에게 주고 싶은 의미는 무엇일까.
“음악은 추억과 향수를 가지고 오는 힘입니다. 그 음악을 들으며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 것…그것을 줄 수 있는 것은 음악뿐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시절을 돌려줄 수 있다면, 음악가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지 않을까요?”
김명일 온라인 뉴스 기자 terry@segye.com
사진 제공=Follow 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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