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숨겨진 인물들)’의 실제 주인공으로 미국 최초의 유인우주비행과 유인달탐사 성공에 결정적 기여를 한 수학자 캐서린 존슨이 10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2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나사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존슨은 우리의 영웅”이라며 “우리는 존슨의 용기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고, 그가 없었다면 도달할 수 없었던 이정표도 잊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제임스 브라이든스틴 나사 국장은 이날 홈페이지에 그의 별세 사실을 알리고 “캐서린 존슨은 나사의 수학자이자 모든 인종이 평등을 누리도록 이끈 개척자였고,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을 성공시킨 공로자이자 수학과 과학교육의 투사였다”며 “나사에서 가장 영감어린 인물 중 한 명이었다”고 고인을 기렸다.
수학영재였던 그녀가 나사와 인연을 맺은건 1953년의 일이다. 수학 교사로 일하던 존슨은 나사의 전신인 미국국립항공자문위원회(NACA)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으로만 구성된 전문 계산원 팀을 꾸린다는 소식을 친척에게서 전해들은것을 계기로 ‘계산원’으로 합류했다. 당시 컴퓨터 수준은 변변찮았고 복잡한 항공 우주 관련 계산은 인간 계산원의 수작업에 의존하던 때였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존슨을 가리켜 “가장 훌륭한 컴퓨터”라고 묘사했고 존슨은 생전에 당시를 “컴퓨터가 스커트를 입고 있던 때”라고 회고한 바 있다.
존슨은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 비행계획인 ‘머큐리 프로젝트’와 인류의 위대한 도약으로 평가받는 달 착륙 프로그램인 ‘아폴로 계획’에 참여해 로켓과 달 착륙선의 궤도를 수학적으로 분석했다. 미국인 최초로 지구궤도를 돈 우주비행사 존 글렌 전 상원의원은 당시 우주선궤도를 계산했던 컴퓨터 ‘IBM 7090’을 신뢰하지 못해 “존슨에게 숫자를 체크하게 하라”고 했고, 이 일화는 영화 ‘히든 피겨스’의 명장면으로 평가된다. 흑인이자 여성이라는 이중차별을 오로지 실력으로 극복한 존슨이지만 늘 겸손했던것같다. 뉴욕타임스가 전한 부고 기사를 보면 존슨은 생전 지역 신문 등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냥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이라거나 “내가 열등하다는 생각은 결코 해 본 적은 없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녀는 나사에서 누구보다 성실했고 일을 사랑했던 인물이다. 하루 16시간 일했고 단 하루도 출근하는 게 흥분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말도 남겼다고 한다. NYT는 그녀가 나사에 재직한 1953∼1986년까지 24편 이상의 논문을 썼다고 보도했다. 존슨은 우주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2015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시민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인 ‘자유의 메달’을 받았고 미 의회는 지난해 제정한 ‘히든 피겨스법’에 따라 의회 최고 훈장인 ‘골드메달’을 그에게 수여했다.
김민서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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