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생충에 등장한 박 사장 집이 전주에 있다던데, 어디에 가면 볼 수 있나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상업영화 시장의 심장부인 미국의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최우수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르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자 영화의 주무대가 된 박 사장(이선균 분) 집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박 사장 집을 찾아가 보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박 사장 집은 철거돼 사라진 지 오래다.
◆‘박 사장 저택’, 서울 성북동 아닌 전주 상림동에 지어져
영화에서 박 사장의 집은 서울의 상류층 동네에 자리한 호화로운 주택으로, 지하실까지 딸려 가지지 못한 자가 가진 자에 기생하는 모습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꼬집는 주 무대다. 하지만 실제 지어진 곳은 서울이 아니라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전주 서부 상림마을 전주영화종합촬영소다.

11일 전주시 등에 따르면 전주영화종합촬영소 야외세트장 부지 330㎡에 터를 잡고 2018년 4월부터 9월까지 약 5개월에 걸쳐 건립했다. 실제 주거 공간을 본떠 수도, 전기시설을 완비했다. 촬영소 실내 촬영소인 J1스튜디오에는 저택 지하 밀실로 이어지는 계단 통로 공간을 설치했다.
정원에는 저택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고가의 정원수를 심고 초록 잔디를 까는 등 세밀하게 신경을 썼다. 멋들어진 이 정원에서 펼쳐진 영화 말미 가든 파티에서 끔찍한 살육전이 벌어진다. ‘기택’(송강호 분) 가족이 폭우를 맞으며 반지하 집으로 달려가는 장면 역시 이곳 야외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기생충의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주요 장면의 촬영공간인 셈이다.
◆기생충 촬영 뒤 저택도 ‘역사 속으로…’ 관광객 “아쉬워”
하지만 영화 마니아들과 누리꾼들, 전주를 찾는 관광객 등이 가장 찾고 싶어 하는 박 사장 저택은 아쉽게도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촬영이 끝난 2018년 9월 바로 철거했기 때문이다.

전주를 찾은 포항시민 장모(58)씨는 “포항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는 지난해 가을 KBS-2TV에서 방영한 인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촬영지로 알려진 이후 주말이면 1만명의 관광객이 찾아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 됐다”며 “전주도 세계적 거장의 작품이 된 기생충 촬영지를 철거할게 아니라 관광 마케팅과 연계했다면 엄청난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창출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전주영상위원회 정진욱 사무국장은 “기생충을 촬영할 때만 해도 봉 감독이 세계적 거장의 경쟁작을 제치고 오스카 최고 영예를 안을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세트장 철거는 운영 규정을 비롯해 이미 예약된 차기 영화 촬영이 꼬리를 문 데다 영화제작사와 봉준호 감독 측이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요청한 것 때문에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사에 길이 남을 기생충의 여러 수상을 계기로 관심이 높아지면서 촬영소 방문객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며 “그러나 영화·드라마 등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곳인 만큼 관광객을 수용해 마케팅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영화 촬영 1번지’된 전주영화종합촬영소…‘남산의 부장들’, ‘나랏말싸미’도 촬영
전주영화종합촬영소는 매년 제작하는 영화만 10여 편을 유치해 ‘영화 촬영 1번지’로 자리하고 있다. 전주영상위원회에 따르면 J2 실내스튜디오 보강공사에도 지난해 유치한 영화·영상물 촬영물은 총 64편으로 집계됐다. 영화종합촬영소 운영일 수는 3개 세트장 합산 723일로 2008년 개소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표적인 작품은 지난달 22일 개봉해 누적 관객 수 458만명을 돌파한 ‘남산의 부장들’을 비롯해 한글 창제 과정을 그린 송강호(세종대왕)·박해일(신미 대사) 주연의 ‘나랏말싸미’ 등이 꼽힌다. 조선에 창궐한 좀비를 소재로 현빈, 장동건이 주연을 맡은 영화 ‘창궐(감독 김성훈)도 촬영했다.

최근에는 탈북한 천재 수학자 ‘학성(최민식)’과 대한민국 상위 1% 학생들이 모인 자율형사립고에서 수포자가 된 고등학생 ‘지우(김동휘)’가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감독 박동훈)’와 류승룡, 염정아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최국희) 2편이 촬영을 마쳤다.
전주영화종합촬영소는 5만6800여㎡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J1스튜디오(2067㎡)와 지상 2층 규모의 J2스튜디오(1311㎡), 그리고 야외 세트장(4만8242㎡)과 2층 규모의 야외촬영센터를 갖추고 있다. 세트 제작실과 스태프실, 분장실, 미술, 소품실, 휴게실 등의 부대시설도 잘 구비하고 있으며 장기 촬영 할인 등 다양한 지원 사업으로 영화·영상 제작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전주영상위는 올해 영상산업기반 조성과 영화산업 육성을 위한 영화촬영 지원을 강화한다. 지역 영화인들이 장편영화 제작시 5000만원을 지원하는 ‘지역영화 제작 지원’ 사업을 최초로 시행한다. 단편영화를 선뜻 제작하기 어려운 예비 창작자들에게는 조명·촬영감독 등 전문 인력을 지원하는 ‘영화영상 제작 슈퍼바이저 지원’ 사업을 진행한다. 지역민들이 활동하는 영상 관련 동아리에서 웹 드라마나 유튜브용 등 영상 제작시 300만원을 지원하는 ‘전주 영상 콘텐츠 구축’사업도 함께 벌인다.
전주=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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