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은 모처럼 가족과 친지가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부부 간 갈등이 증폭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25일 통계청의 ‘최근 5년간 이혼 통계’에 따르면 설과 추석 명절 직후인 2~3월과 10~11월의 이혼 건수는 직전 달보다 평균 11.5%가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설과 추석 명절 연휴 기간에 112에 접수된 가정폭력 신고 건수도 명절을 제외한 날보다 47%가량 늘어났다는 통계도 있다.
이같이 명절에서 비롯한 갈등은 이혼의 사유가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왔다.

1994년 7월 결혼 14년 차였던 A씨는 아내 B씨가 맞벌이를 이유로 시부모를 소홀히 대한다며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재판을 맡은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는 “B씨가 전통적인 며느리의 역할을 소홀히 해 가정불화가 야기된 점이 인정된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맏며느리인 B씨가 결혼 이후 시부모의 생신이나 명절에 시댁을 제대로 찾지도 않는 등 전통적인 윤리의식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26년 전 판결임을 감안하더라도 가정 내 여성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재판부의 인식이 고스란히 담겼다.
2000년대 들어서는 보다 ‘진보’한 판결이 나오기 시작했다. 2003년 5월 대전지법 가사단독부는 ‘시댁 식구에게 극도로 인색하고, 남편에게 포악한 처신을 일삼는다’며 C씨가 아내 D씨를 상대로 낸 이혼 청구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C씨는 D씨에게 시댁에 대한 일방적 양보와 희생을 강요했으며 불만을 폭력으로 해소하는 등 배우자로서 신의를 저버린 만큼 불화의 주된 책임은 원고에게 있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최근의 판결에는 부부가 동등한 위치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했는지를 따지는 추세가 포착된다. 2004년 결혼한 E씨는 아내가 시댁 가족을 친정 식구처럼 정성껏 대하지 않는 것에, 아내 F씨는 남편이 시댁에 대한 의무만을 강조하는 것에 불만을 품었다.
그러던 중 2010년 설날 F씨는 설날 제사 음식을 준비하던 중 미끄러져 허리를 다쳤다. 하지만 시댁 식구들은 걱정은커녕 일도 도와주지 않자 F씨는 시누이, 시아버지와 말다툼을 벌였고 이튿날 혼자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양가 집안싸움으로 번진 이들의 부부싸움은 결국 법정으로 이어졌다. E씨는 F씨를 상대로 이혼과 위자료 1000만원을 청구, F씨는 이혼과 위자료 5000만원을 청구하는 반소를 각각 제기했다.
그러나 서울가정법원은 ‘부부가 똑같이 책임이 있다’며 양측의 요구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E씨는 시댁에 대한 의무만 강요하면서 친가 식구와 함께 F씨를 타박했고, F씨는 반감으로 시댁 식구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아버지에게 대들기까지 했다”며 “남편과 아내 모두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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