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직장인 A(28)씨는 서울 강남구의 한 번화가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다. A씨는 지갑이 어디서 없어졌는지 확실치 않아 당시 동선을 떠올리며 유력한 장소들을 찾아다녔다. 그중 한 곳 인근에 방범용 폐쇄회로(CC)TV가 있는 것을 확인한 A씨는 당시 영상을 열람하기 위해 구청 쪽에 문의했지만, 해당 영상에는 제3자의 얼굴 등 타인의 개인정보가 포함돼 제공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A씨는 “공공 CCTV에 찍힌 내 모습은 당연히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에 놀랐다”며 “함께 찍힌 사람의 동의를 구하면 제공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지 않으냐”고 말했다.

분실물이나 실종된 반려동물 등을 찾기 위해 공공기관이 설치한 CCTV의 영상 열람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지만, 막상 영상을 열람하기는 쉽지 않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12일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각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CCTV 통합관제센터’에 개인영상정보 열람을 신청하는 건수는 매년 증가 추세다.
입법조사처가 지난해 전국 162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확보한 ‘CCTV 통합관제센터 기초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5년 1499건이었던 개인영상정보 열람 신청 건수는 2018년 4545건으로 3배 넘게 증가했다. 열람을 신청한 사유는 △소지품(휴대전화·지갑·서류) 분실 △반려동물 실종 △접촉사고 등 교통사고 확인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 CCTV에 찍힌 자신의 영상은 개인정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해당 기관에 열람을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길거리 등을 촬영하는 CCTV의 특성상 자신을 제외한 제3자의 모습도 함께 찍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제 영상을 확인하기까지는 여러 제약이 뒤따른다. 해당 업무 담당자의 입장에선 제3자의 개인정보가 노출될 경우 이에 따른 법적 책임 소재가 불거질 수 있는 데다 애당초 구체적인 열람 기준 또한 미비한 상태라 공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 2018년 지자체가 접수한 개인정보 열람 신청 4545건 중 ‘개인 열람 조치’가 진행된 경우는 1064건(23.4%)에 불과하다.

서울의 한 구청 CCTV 열람 업무 관계자는 “영상 속에 청구자만 나오고, (해당 인물이) 청구자 본인이라는 점이 확인되면 요청한 영상을 제공할 수 있다”며 “(다른 사람이 같이 나올 경우) 제3자 개인정보 때문에 모든 (열람) 요청에 응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제3자가 영상에 찍힌 경우 아예 열람을 제공하지 않거나, 경찰이나 검찰 등에 사건을 접수해야만 해당 기관에 영상을 넘기는 경우가 잦다. 모자이크 처리 등 제3자의 정보를 가공해 영상을 열람하게 할 수도 있지만, 별도의 처리과정 자체가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의 신체나 간판, 로고 등의 식별정보를 어디까지 어떻게 가려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도 없다. 영상 정보를 열람하거나 제공하는 데 따른 기준이나 신청 방식 등이 지자체별로 다르거나 불분명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영상 속 제3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동시에 요청자에 대한 정보제공 의무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CCTV 영상 정보 열람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개인정보보호법 시행령에 ‘CCTV 영상 열람 요구에 대한 운영·관리 방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선언적 규정만 있을 뿐 열람 여부를 판단할 근거가 될 만한 구체적인 기준은 미비한 상황이다.
최정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영상 제공 여부를 판단하는 담당자들이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하위 법령이나 조례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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