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전쟁 당시 탈레랑은 프랑스 외교장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전후 유럽 질서를 다루는 회의가 빈에서 열렸다. 그는 “회의는 춤춘다”는 말로 유명해졌다. 만찬과 무도회 같은 모임이 많았고 거기서 외교교섭이 이루어졌다. 모임에는 술이 따라다닌다. 우리나라에서도 술은 저녁모임에 필수적이다.

서양 외교관들과 술에 관한 대화 중에 ‘아쿠아 비타’(aqua vita) 즉 ‘생명의 물’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아쿠아 비타는 증류주를 말한다. 라틴어로 ‘아쿠아’는 물, ‘비타’는 생명이라는 뜻이다. 술은 우리나라에서 건강에 주로 나쁜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의료진단을 받으면 “술 마시지 마세요”라는 권고가 자주 등장한다. 우리는 증류주를 독한 술이라고 해서 독주라고 부른다. 우리의 ‘독주’가 서양에서는 왜 ‘생명의 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일까? 생명의 물 즉 아쿠아 비타는 언제 등장한 것일까? 그 유래는 무엇인가?
지금은 아랍세계가 고전하고 있지만, 12세기쯤에는 세계의 문화를 이끌고 있었다. 아랍의 과학자들은 연금술에도 몰두하고 있었다. 알코올이란 말도 아랍 말이다. 그들은 발효주를 끓여서 증류주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그때까지 인류가 수천년 동안 마시고 있던 모든 술은 모두 발효주다. 막걸리, 포도주, 맥주는 모두 발효주다. 쌀, 포도, 호프 등을 발효한 것이다.
서양인들은 13세기에 아랍 기법을 들여와 증류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알코올은 78도에서 증류한다. 물과 다른 이물질들은 아직 증류가 안 되어 남아 있다. 증류주는 보통 알코올 농도가 40% 이상으로 높아진다. 발효주는 대충 알코올 농도가 5∼10% 안팎이다. 증류주는 발효주에 포함된 독소인 아세트알데히드가 물과 함께 제거되어 다른 종류의 술이 된다. 증류주는 조금만 마셔도 긴장이 풀리고, 혈액 순환도 잘 되고, 잠도 잘 오고, 아침에 깨어나도 숙취가 전혀 없다. 증류주의 놀라운 효과를 목격한 이들은 증류주를 아쿠아 비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영국의 위스키라는 단어는 아쿠아 비타가 변해서 생긴 단어다. 프랑스의 코냑과 러시아의 보드카도 증류주다. 몽골인들이 13세기 이란, 이라크를 거쳐 다마스쿠스까지 진출하면서 아랍인들의 증류법을 배워왔다.
원나라시대에 증류주, 즉 수수로 만든 고량주가 중국에 퍼졌다. 중국 발효주는 홍색을 띠는데 증류주는 백색이어서 백주라고 부른다. 고려 시대에 몽골 부대가 안동에 병참기지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우리의 증류주 안동 소주가 탄생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지금 ‘소주’라고 부르는 것은 대부분 증류주가 아니라 ‘희석 소주’다.
1960년대 중반 쌀이 부족하여 쌀로 술을 만드는 것을 금지했다. 우리는 95% 정도의 에탄올을 만들어 이를 희석하고 향료, 단맛 등 첨가하여 희석 소주를 대량생산하였다. 희석 소주는 세계에서 최고로 많이 팔리는 술이 되었고, 우리는 증류주와 거리가 멀게 되었다. 모든 발효주는 발효과정에서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물질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취하면 머리를 아프게 하고, 잠도 방해하고, 아침에 숙취를 일으킨다. 희석 소주도 비슷하게 숙취를 일으킨다.
증류주는 초기에 ‘의약품’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 향나무의 향열매를 원료로 하여 만든 증류주인 진(gin)도 처음에는 의약품으로만 쓰였다. 미국에서 1920년부터 13년간 시행했던 금주령 시대에도 위스키는 의약품으로 약국에서 처방 하에 팔았다.
서양 영화에서는 오후 사무실에서 위스키 등을 꺼내 조금씩 마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수십년 동안 매일 위스키를 소다 등과 함께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절대로 취할 정도로는 마시지 않았고 의학적으로 볼 때 위스키 양이 100㎖를 넘기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증류주도 간에서 알코올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아세트알데히드가 잠시 생산된다. 그래서 증류주도 과음하면 안 된다. 증류주는 음미하면서 천천히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술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절제가 필요하다. 그러면 증류주는 ‘독주’가 아니라 ‘생명의 물’이 된다. 그러면 술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최영진 전 주미대사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