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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세대론적 기억과 열린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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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1-10 23:00:00 수정 : 2020-01-10 22:4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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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기억 다른 일곱 세대 / 자기 세대 문법·언어로만 표현 / 최근 비화해적 갈등 두드러져 / 각 경험 가치 다양성내 흡수를

경자년 새해다. 올해는 만만찮은 역사적 의미를 지닌 사건이 줄줄이 10년 단위의 기억에 의해 소환될 것 같다. 먼저 1950년에 터진 6·25전쟁이 70주년을 맞는다. 4·19혁명은 60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은 40주년을 맞게 돼 민주화를 상징하는 두 개의 분수령도 차례로 기억될 것이다. 4·15총선을 앞둔 ‘정치의 계절’에 이 사건들은 끊임없이 현재형으로 살아나 사람들의 역사 해석에 확연한 기준이 돼줄 것이다.

유성호 한양대 교수 문학평론가

물론 모든 기억은 세대마다 고유한 아우라를 품고 있어 작지 않은 인식의 편차를 드러낸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기억이 서로 다른 일곱 세대가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과 전쟁을 경험한 세대, 한글을 모국어로 처음 배운 세대, 유신 세대, 386세대, X세대, 밀레니엄 세대, 스마트폰 세대 등 다양한 배타적 경험을 겪어온 이들의 권역이 생겨 서로 넘나들기도 하지만 견고한 성채를 두르고 있기도 하다. 요즘 빈번하게 출몰하는 ‘아재’ 이야기나 ‘꼰대’ 이미지 등은 모두 세대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감각의 차이가 일정한 사회적 담론의 형태로 나타난 것일 터이다.

그러나 세대론의 약점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것은 경험을 절대화해 타 세대의 경험보다 자신의 것을 비교우위에 놓는 습성에 있다. “내가 해봐서 잘 아는데”라든지 “너희가 그때를 알아?”, “요즘은요 이게 대세예요” 하는 목소리들은 ‘경험·무경험’의 차이에 따라 진리 결정성을 가지는 오류를 거듭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타자 배제의 목소리는 세대 간의 갈등과 몰이해를 낳는 심리적 원천이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적·종교적·지역적 갈등 외에도 이러한 세대 간의 비화해적 갈등이 표 나게 두드러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유명한 소설인 염상섭의 ‘삼대’, 채만식의 ‘태평천하’, 김남천의 ‘대하’ 등은 가족사를 서사의 뼈대로 삼으면서 그 밑바닥에 3대에 걸친 세대 간의 갈등과 그로 인한 내면적 파국 양상을 그리고 있다. 아마도 서구 사회와는 전혀 다르게 급변해온 우리 근대사가 한 세대라는 세월을 너무도 먼 간극으로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변화 주기가 더 빨라졌다고 한다. 대학생이 고등학생에게, 고등학생이 중학생더러, 중3이 중1에게 “쟤네는 우리 때와 달라”라고 말할 정도로 그동안 암묵적으로 세대를 갈라온 시간은 더 짧아지고 그만큼 아득해지고 있다. 최근 각광을 받은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도 젠더 갈등과 모순을 기저로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여성을 바라보는 세대론적 관점의 차이가 서사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지 않는가.

매체적으로 보아도 활자와 영상과 디지털 사이, 종이책과 전자책 사이, 신문과 포털 뉴스 사이, 일기장과 블로그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사이, 필름과 디카와 스마트폰 사이 등 이미 경험적 간극을 넓혀놓은 무수한 세대 간 이질성이 잠복하고 있다. 오래전 기성세대와 신세대 단 두 세대만 있었던 데 비하면 그 변인이 꽤 다양해지고 또 여러 차원으로 확장해간 것이다. 이래저래 한 사회의 전체성을 경험하고 투시하고 진단을 내놓을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자기 세대의 문법으로 언어로 관행으로 사유하고 표현할 뿐이다.

상호 이해에 기반을 두고 각 세대만의 경험적 가치를 사회적 다양성 안으로 흡수해가는 것이 하나의 공동체가 발전해가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그 점에서 우리는 자기 세대의 감각과 경험에 절대치를 부여한 채 그 안에 함몰돼서는 안 된다. 후속 텍스트를 통해 그때를 더 잘 알 수도 있다는 가정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상이한 경험으로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보편성에 대한 믿음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가 인문학이라고 말하는 범주가 이러한 통합과 공존의 마인드를 진작해 나가기를 바란다. 기억의 고유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달라지는 세대에 대해 열려가는 마음이 그러한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유성호 한양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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