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부근에서 우크라이나항공 여객기가 추락해 탑승객 176명 전원이 사망한 사고를 두고 ‘피격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란 당국은 여객기 사고의 원인이 ‘기계적 결함’ 때문이라는 입장인데, 미국과 캐나다 등 서방 국가들은 이란의 지대공 미사일에 의한 격추로 보고 있다. 사고 여객기의 피격설에 힘이 실리면서, 수많은 사상자를 낸 민항기 격추 사고 사례가 재조명되고 있다.
◆1983년 대한항공 비롯, 민항기 격추의 흑역사
10일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가장 최근 발생한 민항기 격추 사고는 2014년 7월17일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에서 미사일에 격추된 말레이시아항공 보잉 777 여객기다. 이 여객기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이륙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중 사고로 탑승객 298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국제 사고조사팀은 러시아 정보기관의 연루 의혹을 제기했지만, 러시아 측은 관련성을 전면 부인했다.
2001년 10월4일에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러시아 노보시비리스크로 향하던 러시아 시베리아항공 여객기가 우크라이나군 미사일에 맞아 탑승객 78명 전원이 사망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자국 군대가 훈련 중 발사한 미사일에 여객기가 격추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1988년에는 이란항공 655편이 호르무즈 해협 상공에서 미국 해군 함정 빈센스호의 지대공 미사일 공격을 받아 탑승객 290명 전원이 사망했다. 당시 이란과 교전 중이던 미 해군은 상공을 지나던 여객기를 이란 공군기로 오인해 공격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여객기로는 1983년 9월1일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에 격추돼 269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미국 뉴욕에서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007편은 항로를 벗어나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가 사할린 부근 상공에서 격추됐다. 당시 소련은 해당 여객기가 미국의 감시 비행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미국은 이를 부인했다.
5년 뒤인 1978년에도 대한항공 여객기는 항법 장치 이상으로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가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에 날개를 맞고 불시착했다. 당시 탑승객 110명 중 2명이 사망했다.

◆서방국가, 이란 피격 의혹 제기
이번 우크라이나 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를 두고 서방 국가들은 피격설에 힘을 싣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고 원인을 두고 이란을 직접 지목하진 않았지만 “누군가의 실수”, “의심을 갖고 있다” 등의 표현으로 ‘기계적 결함’이 원인이라는 이란 측 주장을 일축했다. 미 CNN 방송은 정보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이란의 러시아제 지대공 미사일 SA-15 두 발에 의해 격추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사고로 자국민이 다수 사망한 캐나다는 물론 영국 정부도 추락 원인을 격추로 지목했다. 추락 여객기의 탑승자 176명 가운데 63명이 캐나다 국적으로 파악됐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캐나다 자체 정보당국과 동맹국들로부터 다수의 정보를 확보했다”면서 “이들 증거는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이란의 지대공 미사일에 맞아 추락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제 그 여객기가 이란의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됐다는 방대한 정보가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여객기의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이날 성명을 내고 “우리는 테헤란 근처에서 벌어진 우크라이나항공 소속 PS-752 여객기 추락에 대한 공지와 예비 사고 보고서를 이란으로부터 받았다”며 “국제민간항공조약 제13 부속서에 따른 항공기 사고조사가 완료돼 공식 결과가 확인되기 전까지 사고의 원인에 대한 섣부른 추측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고 당부했다.
지난 8일 오전 6시12분쯤 이란 테헤란에서 출발해 우크라이나 키예프로 향하던 우크라이나항공 여객기는 이륙 3분 뒤 추락해 탑승자 176명이 모두 숨졌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밝힌 국적별 사망자는 이란 82명, 캐나다 63명, 우크라이나 11명, 스웨덴 10명, 아프가니스탄 4명, 영국과 독일 각 3명이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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