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이라고요? 전혀 몰랐어요.”
“어렸을 때 TV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를 찾아 우주로 떠나는 모험을 그렸죠?”
2020년 새해를 맞아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에서 국산 애니메이션 한 편이 이목을 끌었다. 1989년 KBS 2TV에서 총 13부작으로 전파를 탔던 ‘2020 우주의 원더키디(이하 우주의 원더키디)’다. 이 작품은 이후에도 KBS1에서 ‘날아라 슈퍼보드’, ‘아기공룡 둘리’ 등과 함께 방영됐다. 지금의 3040세대라면 어렴풋한 기억 속에 남았을 애니메이션이며, 한 누리꾼은 작품 영상 관련 댓글에서 “어렸을 적 어떤 시대인지 감도 오지 않는 2020년을 그려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고 반응했다.

◆2020년 시작과 함께 쏟아진 조명…‘제대로 내놓자’ 열정 속 1만컷 수작업
누리꾼의 쏟아진 관심 속에 각종 매체도 ‘우주의 원더키디’를 조명했다. 우주 탐사선 구조 작전에 투입됐다가 실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 떠난 아들의 모험담을 그렸으며, 당시 배경으로 설정한 지구촌 인구 증가와 환경 파괴 등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우주 정복을 외치며 권력을 휘두르던 악당을 물리치고, 아버지를 구출해 우주의 평화를 지킨다는 해피엔딩으로 장식된 ‘우주의 원더키디’는 애니메이션 제작업체인 세영동화가 만들었다.
‘떠돌이 까치’와 은비·까비, 배추도사·무도사가 등장한 ‘옛날 옛적에’ 시리즈 등을 탄생시킨 국산 애니메이션 거목 고(故) 김대중 감독의 지휘 아래, 작가 50여명이 투입돼 한 회당 프레임(한 장면)을 1만개 가량 손으로 직접 그렸다. 촬영을 거쳐 필름에 담긴 프레임을 빠르게 돌리면, 우리가 TV에서 보는 장면이 만들어졌다.
수출을 목표로 ‘제대로 세계에 내놓을 만한 작품을 만들자’는 야심찬 취지 아래 탄생했지만, 작품을 본 언론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남자주인공 이름이 ‘아이캔(Ican)’으로 영어인 데다가 머리카락도 붉은색이 감돌아 순수 국산 애니메이션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SF 애니메이션 생소했던 환경에 헤딩…겹겹이 그린 외곽선에 숨은 열정
세영동화 제작 파트 총괄 출신이자 김 감독의 부인으로, 현재 세영미디어그룹을 운영 중인 최안희씨는 SF 애니메이션을 생소하게 바라본 시장에 뛰어든 그때를 가리켜 “맨땅에 헤딩한 격이었다”고 정의했다.
최씨는 지난 9일 세계일보와 만나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한국만의 콘텐츠를 만들려면 SF 장르가 좀 더 포괄적이고 보편적으로 접근하기에 좋다고 생각했다”며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KBS 영상사업단에서 제작 관련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지금보다 작품 내용을 심의하는 기준이 까다로웠던 탓에 어려움도 있었다”며 “주인공 머리카락이 검은색이 아니어서 당국에서 지적을 많이 받았는데, 단순히 클릭 한 번으로 작품을 수정하는 게 아니고 일일이 색상을 칠하는 방식이어서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덧붙였다.
최씨는 ‘우주의 원더키디’ 스틸컷과 초안(원화)을 공개한 뒤, “일부 인원이 등장인물의 액션 포인트를 잡으면 사이의 연결 동작을 다른 작가들이 그렸다”고 설명했다. 주인공의 감정선을 최대한 드러내고 역동성을 더하려 겹겹이 그린 선에서 제작진 열정이 묻어났다.

◆‘2020년’ 배경에 숨은 비밀…뮤지컬과 영화로 재탄생 앞둬
작품명을 접한 누리꾼들이 궁금했던 사항 중 하나는 ‘왜 2020년을 시대 배경으로 삼았을까’다.
최씨는 “한 세대의 간격을 30년으로 보지 않느냐”며 “부모와 자녀 세대가 함께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만화를 제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1990년대를 앞둔 우리에게 2000년대는 굉장한 설렘과 기대감을 안겨줬다”며 “1990에 30을 더한 ‘2020’은 운율감도 있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피땀 어린 노력으로 탄생한 ‘우주의 원더키디’는 프랑스에 수출됐으며, 1992년에는 ‘2020年 ワンダー―キディ(2020년 원더키디)’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 강국 일본에도 진출했다.
한편, 30년의 간극을 뛰어넘어 새롭게 주목받은 ‘우주의 원더키디’는 올해 안에 영화와 뮤지컬로 재탄생해 어른에게는 추억을, 아이들에게는 SF 작품의 변신을 선사할 예정이다. 앞서 영화 시나리오를 쓰다 고인이 된 남편의 뜻을 잇고, 국산 애니메이션의 성장을 위해 최씨는 작품 구상 등에 몰두 중이다.
글·사진=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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