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정부는 이란의 보복공격 이후 한층 거세지는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파병’ 요구에 대해 신중 모드로 선회하는 분위기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9일 미국의 파병 요청에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부로서는 한·미 간 여러 현안과 함께 전략적 고민을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파병 신중 모드 돌아선 정부
강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호르무즈 파병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입장과 우리 입장이 정세분석에 있어서나 중동지역 나라와 양자 관계를 고려했을 때 반드시 같을 수는 없다”며 “우리는 이란과도 오랫동안 경제 관계를 맺어왔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지난달 12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연 뒤 보도자료를 내고 “호르무즈해협 인근에서 우리 국민과 선박을 보호하고 해양 안보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기여하는 방안도 검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아덴만에 주둔 중인 청해부대의 활동 반경을 넓히는 방법 등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미국의 거셈 솔레이마니 제거와 이란의 보복 공습 이후 상황 판단이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의 요청은 꾸준히 있었고 실제 지난달만 해도 우리가 용인할 수 있는 범위에서 파병 검토가 전향적으로 있었던 것으로 알지만, 지금으로선 우리가 파병으로서 져야 하는 부담이 훨씬 더 큰 상황”이라고 전했다. 우리로선 부담이 커진 만큼 일본, 호주 등 다른 미국 동맹국들의 추이를 보면서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회 보고에서 “(이란의 이라크 내 미군 주둔 기지) 미사일 공격 사태가 일어나고 상당히 많은 것을 염려했을 텐데 의외로 주가, 금융시장이 상당히 안정화되고 있다”며 “국내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은 미미하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NSC 상임위원회를 개최하고 최근의 사태에 대한 논의를 했다. 청와대는 회의에서 중동지역의 군사적 긴장 고조 동향과 국제 정세 전반에 대해 평가하고, 역내 우리 국민과 기업 및 해당 지역을 운항하는 우리 선박의 안전 확보를 위한 긴급대응체계 등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파병 문제, 다른 이슈와 연계 가능성은
다른 현안과 연계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라크 파병 당시 정부는 국내 반대 여론을 잠재우면서 파병 문제로 얻을 수 있는 다른 이익을 설명한 바 있다.
일단 정부는 미국과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을 진행 중이고,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힌 만큼 이에 대해서도 미국과 논의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강 장관은 이날 다음주 미국에서 한·미 또는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이 열린다고 밝혔다. 7일 정 실장 방미와 함께 연이어 열리는 고위급 협의에서 파병 문제와 함께 이슈들이 한꺼번에 테이블에 오르는 상황이다. 정부는 한·미 간 각 이슈는 개별적으로 논의되고 ‘연계전략’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적으로 한 테이블에 오르면 서로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일단 호르무즈 파병과 SMA 협상 연계는 개연성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지난달 청와대가 약 반년 만에 처음으로 NSC에서 호르무즈 방위 문제를 먼저 꺼낸 것이 방위비 협상 직전이고, 양국 협상에서도 ‘동맹 기여’ 문제가 오르내린 바 있다. 협상팀이 호르무즈 문제가 논의된 적은 없다고 밝혔지만, 동맹 기여라는 발언 자체에 담긴 함축적 의미가 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한 연계는 더욱 조심스러운 문제지만, 일각에선 이라크 파병 당시 정부가 이를 6자회담에서 한국 목소리를 키울 기회로 인식했다는 점을 거론한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한·미 간 협상은 링키지(연계)전략보다는 디커플링(탈동조화) 전략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홍주형·최형창·김달중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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