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혹은 남자)가 돼 가지고 도대체 왜 그러니?’
이런 성차별적 발언을 들었을 때 여성은 불쾌감,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주로 느끼는 반면, 남성은 중립적이거나 순응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술지 ‘여성연구’ 최신호에 실린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의 ‘성차별 언어 접촉 경험의 성별 효과’ 논문에 따르면 성차별적 발언에 대한 남녀의 반응이 달랐다.
고등학생 이상 남녀 1805명의 응답률을 점수화한 결과 남녀 모두 성차별 언어표현을 들었을 때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은 불쾌감(여성 2.565, 남성 1.925)으로 조사됐다.
두 번째로 언급된 감정은 남녀가 확연히 달랐다. 여성은 분노(0.554)가 2순위 감정이었던 데 비해 남성은 무감정(0.748)을 꼽았다. 남성들은 성차별 언어를 들었을 때 불쾌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심리적 스트레스를 그다지 받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성별 차이가 뚜렷이 나타나는 또다른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성차별적 언어를 들었을 때 죄책감을 느끼는 여성의 응답률 점수는 0.008인 반면, 남성은 0.039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여기서 말하는 죄책감이란, 상대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아니라 ‘여자가 너무 나댄다’거나 ‘남자는 키 작으면 루저(패배자)’ 같은 말을 들었을 때 이에 부응하지 못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말한다. 연구진은 “우리 사회에서 성차별 언어로 감정적 상처를 입는 사람은 대체로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성적대상화’와 관련된 성차별 언어에서는 여성도 ‘무감정’ 응답이 높았다. 성적대상화 언어란 ‘명품 복근’, ‘핫바디’, ‘꿀벅지 노출’처럼 성적 쾌락의 대상으로 상대방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표현에 대해 별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응답이 많은 것은 대중매체 속에서 비판의식 없이 성차별적 언어가 자주 등장하는 데다 성별에 국한하지 않고 널리 사용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성차별적 언어는 이성에 대한 신뢰하락으로 이어졌는데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그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연구진은 “성차별 언어에 대응하는 기제에 있어 여성과 남성이 명확히 다른 패턴을 보인다”며 “이는 남혐, 여혐 같은 성별 갈등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전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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