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자치단체와 모니터링 담당자의 안이한 판단, 인력부족과 응급안전서비스 기기 오작동….
얼마 전 광주 남구의 한 주택에서 뇌병변 장애가 있는 A(63)씨와 필리핀인 아내 B(57)씨가 병마, 가난과 사투를 벌이다 쓸쓸하게 세상과 결별하기까지는 복지서비스 체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독거노인과 중증 장애인이 고독사 등 위기에 놓이지 않도록 돕는 ‘응급안전알림이’ 서비스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8일 광주 남구와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A씨 부부는 지난 6일 오전 9시 30분쯤 차디찬 방바닥에 쓰러져 숨진 채 구청 공무원에게 발견됐다. 경찰은 닷새 전 아내 B씨가 뇌출혈로 먼저 쓰러지자 거동이 어려운 A씨가 이불을 덮어주려다 침대에서 떨어진 뒤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2004년 필리핀에서 온 B씨와 결혼한 A씨는 형편이 어려워 이듬해부터 월 100만원가량 지원되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살다 2015년 2월 교통사고를 당해 뇌병변 장애가 생겼다고 한다. 이후 거동이 불편해 침대에서 누워 지내며 아내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관할 지자체에서는 고독사를 방지한다며 중증장애인이나 독거노인 가정을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있지만 A씨의 경우 돌봐줄 사람(B씨)이 있다고 제외됐다. 대신 A씨 집에는 ‘응급안전알림이’가 설치됐다. 정부와 지자체는 2015년부터 독거노인이나 중증장애인이 사는 집에 위급상황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응급대처하기 위해 응급안전알림이를 설치하고 있다. 광주의 경우 현재까지 5개 자치구 1286가구에 설치돼 있으며 구별로 1∼2명씩 모두 9명의 모니터 요원이 담당하고 있다. 모니터 요원 1명이 평균 142명을 관리하는 셈이다.
남구도 A씨 집을 포함해 관내 191가구에 7600여만원을 들여 응급안전알림이를 설치하고 직원 1명이 관리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서비스도 ‘담당자의 방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응급안전알림이는 4시간 동안 사람의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모니터 요원에게 통보된다. 그런데 지난 1일 A씨 집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았다. 이에 모니터 담당자는 다음날 평소 연락하던 B씨에게 전화도 하고 ‘왜 움직임이 없는지 확인을 바란다’는 내용의 문자도 보냈으나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 서비스 운영 지침에는 활동이 감지되지 않을 때 모니터 요원은 해당 가구에 문자와 유선으로 연락하고, 관내 통장에게 확인을 요청하도록 돼 있다. 직접 찾아가 응급상황 유무도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 사례처럼 단순 오작동이겠거니 생각해 지침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구 관계자는 “최근 두세 달간 이 장애인 부부의 가정에 설치된 응급안전알림이가 오작동을 했다”며 “모니터 요원이 이번에도 단순한 오작동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해 더 이상 조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사회보장정보원으로부터 받은 ‘응급안전알림서비스 오작동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 4년간 장비 오작동과 민감작동으로 인한 신고는 1만3000여건이나 됐다. 이 서비스로 소방본부에 출동요청이 들어온 신고 내용 중 38%가 오작동 및 민감작동 탓이었다. 서비스 첫해인 2015년(독거노인 7419건, 장애인 525건)에 비해 2018년(〃 4338건, 〃 158건)에 오작동 발생건수가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다. 담배연기나 스프레이 살충제, 벌레 등에도 기기가 민감하게 반응해 알람이 울려 서비스 이용자들을 불안케 하고, 소방본부가 응급출동을 했다가 헛걸음을 하기도 한다.
담당 인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모니터 요원의 교대 인력이 없어 주말과 공휴일, 야간에는 모니터링을 하지 못하고 이상을 감지해도 자리를 비우고 직접 찾아가보는 게 쉽지 않다. 남구 관계자는 “이번에도 모니터 요원이 독거노인 가정을 방문하느라 미처 장애인 부부에게 관심을 두지 못한 것 같다”며 “모니터링 사각지대 등은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광주대 정희경 교수(사회복지학)는 “지자체 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지역민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자주 찾아가는 등 지역사회 차원에서 돌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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