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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보다 극적인 영화 ‘미드웨이’ 제작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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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1-07 10:33:46 수정 : 2020-01-07 10: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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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전쟁영화”…감독 열정으로 20년 만에 탄생 / 개봉 7일 만에 70만 관객 돌파
영화 ‘미드웨이’에서 미드웨이 해전 당시 미국 해군의 공습으로 일본 해군 항공모함이 폭파되고 있는 장면. 1942년 6월 4일 시작된 이 해전에서 미국이 승리를 거두며 태평양전쟁의 전세,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었다. 누리픽쳐스 제공

지난 6일 개봉 7일 만에 7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미드웨이’는 1942년 6월 4일 미드웨이 해전 첫날을 스크린에 옮겼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정보 실패인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이 6개월 만에 태평양전쟁 전세를 어떻게 뒤집었는지 생생히 그려냈다.

 

‘인디펜던스 데이’(1996)와 ‘투모로우’(2004), ‘2012’(2009) 등 재난영화의 본보기를 제시한 에머리히 감독은 이번엔 “이것이 전쟁영화다”고 말하는 듯하다. 잭 스마이트(1925∼2003) 감독이 1976년 이미 영화화한 ‘미드웨이’와 비교하면 영화의 사실성이 부각된다. 신파적인 요소도 없다. 1976년의 ‘미드웨이’는 실존 인물들보다 나이가 많은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다른 전쟁영화 장면을 차용했다는 이유로 평단의 호평을 받지 못했다.

 

영화의 탄생 과정은 실화 못지않게 극적이다. 에머리히 감독의 열정과 집념으로 20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1990년대 말, 그는 소니 픽처스 소유의 콜롬비아 트라이스타와 손잡고 영화화를 추진했으나 소니가 1억달러가 넘는 제작비에 난색을 보여 무산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1년 ‘진주만’이 개봉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일제히 그를 외면했다.

 

영화 ‘미드웨이’에서 미드웨이 해전을 성공으로 이끄는 미국 해군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의 폭격기 조종사 딕 베스트(에드 스크레인·왼쪽)와 그의 동료. 베스트를 비롯한 영화 속 주인공은 실존 인물들이다. 누리픽쳐스 제공

그는 좌절하지 않고 중국으로 눈을 돌려 제작비를 충당했다. 제작비를 1억달러(약 1166억원)로 줄이기 위해 촬영 일정을 90여일에서 65일로 단축해야 했다. 그의 집념에 우디 해럴슨과 패트릭 윌슨, 에드 스크레인, 데니스 퀘이드 등 명배우들이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합류했다.

 

에머리히 감독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인터뷰에서 “자유를 위한 투쟁에 대한 영화”라며 “시각효과(VFX) 때문에 1억달러 미만의 제작비로는 불가능했고 힘들었지만 해냈다”고 말했다.

 

진주만 공습과 미드웨이 해전 사이, 1942년 4월 18일 둘리틀 공습이 있었다. 미 해군은 제임스 둘리틀(1896∼1993) 중령의 지휘 아래 일본 본토를 공습했고 생존자들은 중국을 거쳐 미국에 돌아갔다. 일본의 보복으로 중국 민간인 약 25만명이 희생됐다. 이 영화가 중국 자본을 유치해 만들어지고 중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건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지난해 11월 중국에서 개봉해 미국(5619만여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4188만여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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