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가 세계적으로 열풍이 식지 않고 있는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라인업에 ‘콤팩트 세그먼트 최초의 7인승’이란 새 모델, ‘더 뉴 메르세데스-벤츠 GLB’를 추가했다. 말 그대로 차급은 소형인데 3열을 적용했다. ‘소형차에 3열…’ 상상만 해도 답답하다. 세계 최고 프리미엄 브랜드로써 안락함을 최고 가치로 표방해온 벤츠가 왜 이런 무리수를 택했을까.
지난해 11월 말 스페인 말라가에서 이틀 동안 신차를 꼼꼼히 경험하고 개발자들과 밤 늦도록 대화를 나눴다. 벤츠는 최근 시장 트렌드와 소비자들의 요구를 얄밉도록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주요 타깃 소비자층으로 ‘영 포티’(Young Forty), 즉 활동적인 40대 가장을 설정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지갑이 얇은 2030세대의 마음도 흔들어 놓을 것이 자명했다.
벤츠 콤팩트카 개발을 총괄하는 미카엘 바우어의 설명이다. 구상을 시작한 것만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없던 세그먼트를 내놓는 만큼 철저한 사전조사를 거쳤다. 그는 “동급에 7인승 모델이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며 “소형이면서도 가족 또는 친구들이 탈 수 있는 차에 대한 요구가 늘어날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5명 이상 탑승하길 선호하면서도 도심 속 주행이 버거운 큰 차는 원하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벤츠가 시승지로 택한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는 오랜 역사를 가진 유럽 도시들이 그렇듯 도로폭이 협소하고 상태가 좋지 않았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벤츠 SUV 라인업은 ‘GLA-GLC-GLC 쿠페-GLE-GLE 쿠페-GLS-G클래스(G바겐)’로 이어진다. GLB가 가세하면서 8종으로 늘게 됐다. 덩치로만 보면 전장과 전폭, 전고가 각각 4634㎜, 1834㎜, 1658㎜로 GLA(4440x1805x1505)보단 GLC(4660x1870x1650)에 육박한다. 하지만 성격이 독특하다. 바우만 총괄 말처럼 입문형 SUV인 GLA의 ‘역동성’, 소형 다목적차량(MPV)인 B클래스의 ‘다재다능함’을 포괄하면서 미드 사이즈 SUV인 GLC의 ‘넉넉함’까지 담아내려 노력했다. 그래서 경쟁차종도 애매하다. 바우어 총괄은 “굳이 꼽는다면 X1 롱휠베이스(BMW), 티구안 올스페이스(폴크스바겐) 정도”라고 말했다. 모두 길이를 늘린 중국향 모델이다.
GLB의 최대 강점은 차체 대비 넉넉한 공간이다. 스케치 단계부터 이 점을 가장 염두에 뒀다. 날렵하게 빠진 기존 벤츠 SUV와 달리 A, C필러가 수직에 가까운 박스형이다. 전고는 GLC보다 8㎜ 높다. 이에 대해 올리버 슈넬 디자인 담당은 “GLS와 G클래스 사이에서 태어난 SUV”라고 표현했다. ‘오프로더의 전설’로 불리는 G클래스는 험로 주파를 목적으로 탄생한 정통 SUV다. GLB 휠베이스는 2829㎜로 B클래스보다 100㎜나 길다. 2열좌석을 앞뒤 140㎜까지 조절할 수 있고 7인승 모델은 3열좌석 쿠션을 분리된 형태로 제공한다. 다만 3열은 ‘탈 수 있다’는 개념이지 ‘안락하다’고 느끼기엔 무리다. 벤츠는 “안전을 위해 신장 168㎝ 이하 승객만 탑승할 것을 권한다”고 밝혔다. 적재공간(5인승 기준)은 1755L까지 확장할 수 있다. 박스 구조다보니 공간 활용성이 훌륭하다.
오프로드 성능도 발군이다. 벤츠의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인 ‘4MATIC’을 선택하면 ‘오프로드 엔지니어링 패키지’를 장착할 수 있다. 6개 하위모델 중 GLB250 4MATIC, GLB200 d 4MATIC, GLB220 d 4MATIC이 이에 해당한다. 고성능 모델인 AMG GLB 35 4MATIC도 마찬가지다. 간단한 스위치 조작으로 엔진 동력 전달 및 ABS 제어를 조절할 수 있다. 경사도, 기울기, 서스펜션 설정 등도 애니메이션 형태로 디스플레이에 표시돼 이해가 쉽다. 특히 다운힐 속도 조절(DSR) 시스템이 믿음직스럽다. 원하는 속력(2∼18㎞/h)을 설정하면, 발을 떼도 바닥으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은 가파른 경사로 지면을 움켜 잡으며 묵묵히 내려간다. 이때만큼은 G클래스를 맞먹는 야무진 모습이다. 서울에서 강원도 속초를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우수한 국내 도로 환경에서 쓸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의의 상황에서도 험로를 극복할 수 있는 SUV와 ‘무늬만’ SUV인 차들은 종부터 다를 것이다.
아쉬움도 있었다. 제원상 배기량 1332∼1991㏄인 4기통 직렬 엔진은 최고 출력 116∼224마력(hp)을 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걸리는 제로백이 6.9∼11.3초 수준인데 중속을 넘어서면 ‘힘이 달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시승 도중 만난 이스라엘 기자는 “너무 약해(too weak)”라고 웃었다. 물론 AMG 모델(306hp)은 예외다. 서울 등 시내 주요 도로 제한속도가 50㎞로 떨어진 점도 위안할 만하다. 시속 80㎞ 언저리부터 바닥소음, 풍절음이 꽤 크게 느껴진 점 역시 아쉬움이다.
국내 출시는 하반기, 들여올 구체 모델과 가격은 미정이다. 최근 다임러는 유럽 판매가를 GLB 200 3만7700유로(약 4900만원), GLB 250 4MATIC 4만4857유로(약 5800만원)부터로 책정했다. 옵션이 거의 없는 차량 기준이다. 벤츠에서 또 하나의 판매 신화를 쓸지, 애매함으로 교훈을 남길지 시장 판단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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