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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넘은 돌다리를 건너며 새해 설계해볼까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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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1-04 06:00:00 수정 : 2020-01-03 20: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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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돌다리처럼 흔들림없이 꿋꿋하게/진천의 유적 농다리 독특한 자연미/올해는 또 어떤 길을 갈까/한걸음씩 천천히 걸으며 사유의 시간 가져

 

콜로세움, 피라미드, 파르테논신전, 앙코르와트. 여행자들은 세계의 유명한 문화유산을 바라보며 경외심에서 사로잡힌다. 돌의 무한한 생명력. 수많은 전쟁을 거치면서 훼손되기도 하지만 억겁의 세월을 버텨나가는 것이 돌이다. 그에 비하면 인간 육체의 시간은 그저 ‘찰나’다. 대자연의 위대함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새해가 밝았다. 올 한 해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 지난해 못다 한 계획들을 올해는 꼭 마치리라. 여러 생각과 각오로 머리와 몸이 분주해지는 시간이다. 하지만 바쁠수록 돌아가는 법. 천천히 걸어 보자. 자연과 호흡하며 한 걸음씩 발을 내딛다 보면 머릿속은 차분하게 정리되고 올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지도가 그려질 것이다.

 

진천 농다리

#1000년이 넘는 돌다리를 건너다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 살아서는 진천이 좋고 죽어서는 용인이 좋다는 뜻이다. 물 맑고 산이 좋아 사람 살기 가장 좋은 곳으로 소문난 곳이니, 천천히 걸으면서 새해를 설계하기 안성맞춤이다. 1000년이 넘은 소중한 유적 진천 농다리를 건너보자. 돌보다는 나무를 가까이한 우리나라는 많은 문화재가 불타 사라지면서 수천년의 역사를 이어오지 못했는데 농다리는 돌로 만든 드문 유적 중 하나다.

 

진천 농다리 드론촬영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세금천에 도착하니 몹시 독특한 모양의 돌다리가 천을 가로지른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생선뼈 같기도 하고 다리를 꿈틀대면서 천을 기어가는 지네의 형상 같다. 검붉은 색이 한눈에도 오랜 세월을 드러내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다. 1932년 발간된 상산지(常山誌)에는 ‘고려 초기에 임장군이 축조했다고 전해진다’는 기록이 나온다. 마을 사람들은 이 돌다리를 ‘농교(籠橋)’라고 부른다. 대나무로 짠 바구니 같은 다리라는 뜻이다. 큰 돌과 작은 돌을 마치 대바구니를 만들 듯 엮어 물이 줄줄 잘 빠져나간다. 세찬 물줄기에도 1000년이 넘도록 다리가 떠내려가지 않고 잘 버틴 이유다.

 

하늘의 별자리 28수를 응용해 28칸으로 만들었다니 심오한 우주철학도 담겼다. 사력암질의 붉은색 돌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 올려 먼저 교각을 만들고 그 위에 상판석을 얹은 독특한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교각의 폭은 4∼6m 정도이고 폭과 두께가 위로 갈수록 좁아져 장마에도 물의 영향을 덜 받아 다리가 유실되지 않도록 고안했다.

 

마침 연인들이 손을 잡고 다리를 건넌다. 꼭대기에 ‘생거진천’ 글자가 적힌 절벽, 유유히 흘러가는 푸른 물, 돌다리에 잠시 선 연인들이 한데 어우러지니 영화의 한 장면이다. 실제 드라마 촬영장소로도 인기란다. 다리를 건너기 전 오른쪽에서 찍는 사진이 아주 잘 나온다. 돌다리를 건너본다. 상판석은 다른 돌보다 아름다운 무늬가 돋보이는데 특별히 선별해 얹은 듯하다. 돌다리 하나를 만들면서도 미적 감각을 고려한 옛사람들의 예술혼이 느껴진다.

 

다양한 전설이 전해진다. 장마에 농다리 상판이 뜨면 나라에 큰 재앙이 일어나고 훌륭한 인물이 죽거나 기상이변이 일어났다고 한다. 고종 31년의 동학혁명과 한국전쟁 등이다. 정자, 산책로, 초평저수지까지 연결된 수변 데크가 잘 조성돼 걷기 좋다. 인근 두타산 삼형제봉 한반도지형전망공원에 오르면 중국, 일본, 제주도를 거느린 초평호 한반도지형을 볼 수 있다.

 

#돌처럼 긴 생명력 운보의 예술혼을 마주하다

 

인간의 삶은 아주 짧지만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은 돌의 생명력처럼 세대를 통해 이어진다. 특히 거장이라면 많은 울림을 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감상하기 위해 파리 루브르미술관 앞에서 몇시간 줄서는 이유다. 농다리를 건너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형동2길 ‘운보의 집’으로 향한다. 운보 김기창 화백이 노년을 보낸 곳이다. 과거 친일 행적이 그의 평가를 엇갈리게 만들지만 그는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한국 근대미술의 거목이다.

 

‘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미 고인이 된 아내의 목소리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게 유감스럽고 또 내 아이들과 친구들의 다정한 대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것이 한(恨)이라면 한이지요’. 운보의 집 입구 돌에 적힌 그의 회상이다. 운보의 이름은 알아도 그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운보는 8세 때 장티푸스에 걸려 후천성 청각장애인이 됐다. 하지만 그는 “요즘같이 소음공해가 심한 환경에서는 늙어갈수록 고요 속에서 내 예술에 정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말한다. 장애를 창작 의지로 바꾼 거장의 예술혼이 느껴진다. 사실 우리는 운보의 작품을 매일 보고 있다. 1만원권 지폐에 있는 세종대왕 표준 영정이 그의 작품이다.

 

운보의 집 뒤편 정원
운보와 우향의 묘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에 있는 운보의 집은 운보가 1976년 부인 우향 박래현 화백과 사별한 뒤 7년에 걸쳐 지은 한옥으로, 말년에 이곳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양지바른 곳에 아름다운 전통양식의 한옥이 서 있다. 안채와 행랑채, 정자와 돌담, 연못의 비단잉어가 마치 운보의 그림 같다. 한국의 100대 정원 중 한 곳으로 선정된 이유다. 감나무에는 아직 ‘까치밥’이 그대로 주렁주렁 매달려 운치를 더한다.

 

운보 작업실
예수의 생애 특별관 가는길
운보동상
운보의 집 조각공원

작업실로 들어서니 작품에 사용한 다양한 묵과 인장들에서 운보의 숨결이 묻어나온다. 이곳에서 아주 귀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예수의 생애 특별관이다. 운보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산으로 피란, 이듬해부터 예수의 생애 연작 시리즈 30점을 발표했다. 예수와 주변 인물을 한복 차림의 한국인으로 표현한 새로운 시도가 눈길을 끈다. 운보미술관 앞에는 그가 동상이 되어 지팡이를 짚고 앉았다. 개인 미술관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데, 운보의 주옥같은 작품 100여점이 전시돼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만날 수 있다. 운보와 우향의 묘가 인근에 조성됐고, 조각공원에는 유명작가들의 다양한 조각작품들이 자연에 녹아 있다. 서로를 보며 활짝 웃는 부부상이 인상적인데 마치 운보와 우향을 보는 듯하다.

 

증평 에듀팜 벨포레목장 양떼들
심우진 목장장과 코니,  캘리

#양떼목장·롤러코스터 보트 신나는 에듀팜

 

인근 증평에는 에듀팜관광단지가 지난해 8월 문을 열었다. 300만㎡ 규모의 중부권 최대 관광단지로 익스트림 루지, 롤러코스터 보트, 양몰이 공연 등 이색적인 레포츠와 볼거리가 가득하다. 또18홀 골프코스와 객실 90개를 갖춘 콘도미니엄도 있어 겨울여행하기 좋은 종합테마파크다.

 

벨포레 목장의 양몰이 공연이 가장 인기 높다. “라이다운! 어웨이! 푸쉬!” 삼양목장 등을 거친 10년 경력의 베테랑 심우진 목장장이 지시를 내리자 보더콜리 종인 코니와 캘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양떼들을 한 곳으로 모은다. 영어를 아주 잘 알아듣는 똑똑한 개들이다. 코니는 미국 덴버에서 태어난 지 2개월 때 데려왔는데 아빠는 소몰이를 했단다. 코니가 아주 날쌘 동작으로 좌우를 오가며 양떼를 좁은 다리로 몰아 우리에 집어넣자 관람객들의 박수갈채가 터져나온다.

 

원남 저수지를 끼고 있는 마리나클럽에서는 롤러코스터 보트 등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물살을 가르다 갑자기 360도로 회전하는데 몸이 물속으로 던져질 듯 짜릿한 쾌감이 전해진다. 제트보트, 요트, 드래곤보트, 허리케인, 플라이피시, 바나나보트를 즐길 수 있다. 무동력 카트를 타고 산길을 달리는 익스트림 루지도 급경사를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묘미를 선사한다.

 

증평소리음악사
증평 삼순이식당 짜글이

증평에듀팜관광단지는 2021년까지 영화관, 수변무대, 워터파크, 복합 연수시설, 곤충·숲 체험장, 귀촌체험 센터, 식물원, 힐링촌 등을 순차적으로 개장한다. 증평에듀팜관광단지는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어 중부지역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발돋움할 것으로 보인다. 증평 소리음악사에서는 추억이 담긴 옛 가수들의 테이프 앨범이 손님을 기다리고, 바로 옆 삼순이식당에서는 육질 좋은 돼지고기와 묵은지를 넣어 끓이는 짜글이가 여행자들의 허기를 달래준다.

 

진천·청주·증평=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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