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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비 없어 선택했던 축산고… ‘운명적 돼지사랑’은 시작됐다 [나의 삶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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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1-04 11:09:15 수정 : 2020-01-04 1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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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 6차 산업화 꿈꾼다’ 원주 돼지문화원 장성훈 대표 / 축산의 6차산업? / 온천관광객 유치 日 사례 벤치마킹 / 생산·가공·체험·관광·문화 다 누리는 / ‘돼지’테마로 산업형 문화공간 조성 / 35년 축산명인 되기까지 / 대관령축산고 뭔지도 모르고 입학 / 돼지 똥부터 치우며 종돈회사 취직 / 연매출 250억 돼지농장 대표 우뚝 / 이젠 사회공헌으로 / IMF·구제역 등 어려움도 많았지만 / 주변 도움 받은 것처럼 도움 베풀 때 / 北·아프리카 축산기술 이전 돕고싶어

“돼지문화원을 6차 산업의 표준 모델로 만들 생각입니다. 체험과 관광 등을 위해 외지인들이 찾아오는 활기찬 농촌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12월 27일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월송리에 있는 돼지문화원에서 장성훈 대표를 만났다. 장 대표는 최근 농촌진흥청에서 주관하는 ‘2019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에 선정됐다. 축산 분야 명인으로 뽑힌 장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돼지 박사’다. 그가 운영하는 돼지농장과 종돈장 등은 연매출 250억원에 이를 정도로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지만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의 노력과 땀방울이 녹아든 결과다.

 

그는 강원도 양구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생활형편이 넉넉지 못해 초등학교 졸업생 20명이 다 가는 중학교 대신 비정규학교인 고등국민학교에 입학했다. 검정고시를 통해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아버지와 함께 1년 동안 농사를 지었다. 시골에 있다가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 돈 없이도 다닐 수 있는 고등학교를 찾던 중 대관령축산고등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학비는 무료였고 기숙사비만 부담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어 입학을 결정했다.

 

축산고등학교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들어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푸른 초원에서 말 타고 소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선택한 고등학교였지만 정규수업 일수 가운데 60여일을 인근 목장에 가서 풀 베고 소똥 치우는 허드렛일을 해야만 했다. 똑똑한 애들은 학교 실정을 알고는 재수해서 인문계 학교로 진학을 하거나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지만 그는 중도 포기하면 고등학교를 영영 졸업하지 못할 것 같아 꾹 참고 다녔다. 고등학교 선배들이 취직하지 말고 대학을 진학하라는 권유에 따라 축산대학 낙농학과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축산 외길 인생이 시작됐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돼지농장에 취직했다. 대졸자는 기사나 주임 직급을 달고 중간관리자 일을 맡는 것이 보통이었다. 돼지농장에서 일한다고 하지만 얼치기 직원에 불과해 고졸 사원으로 위장 취업해 밑바닥부터 농장 일을 배웠다. 반년도 안 돼 농장 주인이 눈치채는 바람에 대졸자 주임으로 근무하면서 돼지를 직접 키우고 돌보는 일을 했다. 6년 동안 돼지농장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는 국내에서 제일 큰 종돈 회사에 영업부장으로 입사했다. 돼지 박사나 다름없던 그는 종돈 영업의 달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종돈 회사에 다니면서 그는 마흔 살이 되면 내 농장을 차려 독립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1997년 마땅한 농장이 매물로 나오자 그는 저축한 돈과 은행에서 빌린 돈을 합쳐 돼지농장을 매입했다. 창업하자마자 들이닥친 외환위기는 축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도 농장이 부지기수였고 동남아로 도피하는 농장주도 생겨났다. 하지만 그에게는 위기는 기회였다.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어미돼지를 사육할 수 있도록 농장구조를 바꾸는 등 공격적으로 경영했다. 외환위기를 넘기자 새끼 돼지수요가 늘어난 데다 돼지가격이 폭등하면서 그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는 단순하게 돼지만 사육하는 농장에 머무르지 않았다. 종돈 개량을 통해 ‘치악산 금돈’이라는 브랜드육을 개발했다. 치악산 금돈은 국내 환경에 맞는 무난한 육종이다. 새끼를 많이 낳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성장하고 육질이 뛰어난 특성을 갖고 있다. 랜드레이스 수컷과 요크셔 암컷을 교배시킨 후 얻은 1대 잡종 돼지와 육질이 뛰어난 두록저지 수퇘지를 교배시켜 만든 3원 교잡종 비육돈이다. 특히 두록암퇘지를 상품화해 판매하고 있으며 맛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양돈업에 6차 산업을 접목한 첫 양돈인으로 불린다. 우수한 돼지를 생산하는 종돈 및 양돈 사업이 1차 산업이라면 양념육과 곰탕, 소시지, 돈가스 등 돼지고기 가공식품을 생산하는 2차 산업, 식당과 직매장·체험·숙박 등 3차 산업을 복합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6차 산업인 돼지문화원을 운영하고 있다.

 

돼지문화원은 생산, 가공, 체험, 관광 및 문화공간이 어우러진 6차 산업형 테마파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7일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월송리에 있는 돼지 테마파크인 돼지문화원의 장성훈 대표가 미니피그를 안고 평생 양돈인으로 살아온 과거를 설명하고 있다. 장 대표는 축산분야의 6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제원 기자

2011년 문을 연 돼지문화원이 현재는 연간 6만여명이 찾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초기에는 벼랑 끝에 몰릴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 구제역으로 키우던 돼지 2만2000여두를 땅에 묻은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살처분 보상으로 받은 돈으로 밀린 부채를 청산한 그는 돼지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보고 체험할 수 있는 돼지문화원 건립에 집중했다.

 

돼지문화원 설립은 1993년 종돈에서 우수사원으로 선정돼 일본 사이타마현의 사이보쿠 농장으로 연수를 간 것이 계기가 돼 시작됐다. 돼지농장에서 온천 관광객을 상대로 식당을 운영하는 것을 보고는 ‘언젠가 나도 이런 것을 운영해야지’ 하는 생각을 가졌다. 이후 일본 미에현 이가시에 있는 모쿠모쿠 농장은 돼지문화원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사이보쿠농장에서 돼지문화원 설립의 꿈을 키웠다면 모쿠모쿠 농장은 꿈을 실현하는 롤 모델이 됐다. 모쿠모쿠 농장은 ‘6차 산업의 교과서’로 불릴 정도로 돼지 생산 농가를 중심으로 소시지, 햄 등을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체험, 숙박, 지역 농산물 판매까지 제공하고 있다. ‘농업에 관한 모든 것을 판다’는 의미에서 농촌 테마파크로 불린다.

 

그는 “일본의 경우 6차 산업으로 인증을 받으면 생산품을 의무적으로 구입하는 제도가 있지만 우리는 인증으로만 끝나 아쉬움이 크다”며 “인증을 위한 인증이어서는 6차 산업인증업체가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6차 산업으로 인증받은 업체의 제품은 의무적으로 쿼터를 정해 리조트, 관공서, 군부대, 학교 등에서 사주는 제도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농장에는 성공사례를 배우기 위한 농업인과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으로부터 귀농귀촌교육기관과 한국농수산대학의 현장실습장으로 지정되면서 후계교육에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다.

 

“축산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위기일 때가 기회고 밑바닥일 때 투자하라고 얘기합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절 어려움을 극복하고 재기한 과정 등을 실감 나게 전하면서 명강사로 소문이 자자하다. 식량 산업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생존한다거나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 강의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농촌 그중에서도 축산업이야말로 젊음을 투자해 볼 만한 분야라고 강조한다. 그의 아들(30)과 딸(28)도 축산대학을 졸업하고 양돈업에 뛰어들었다. 같은 과 직속후배인 아들은 돼지사육에 달인이 되겠다며 농장에 들어가 밑바닥부터 체험하며 일을 배우고 있다.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나선 자식을 볼 때마다 뿌듯하고 대견한 마음이 든다.

 

양돈업에 종사한 지 올해 35년째인 그의 농장에서 사육하는 돼지는 2만2000마리이며 종돈으로 판매하는 양은 연간 1만 마리, 출하 두수는 4만 마리에 이른다. 인공수정센터에서는 10만 마리 분량의 정자를 생산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전국 5500여개 돼지농장 가운데 50번째 정도로 성장했다.

 

축산명인으로 선정된 그는 사회공헌사업에 적극적이다. 힘들었을 때 도움을 받아 자립한 만큼 베풀고 싶은 마음에서다. 아직 부채를 전부 상환한 상태가 아니지만 봉사를 사업의 일부분으로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2016년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원주사회복지협의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국제비정부기구(NGO) 굿파머스의 국내분과 이사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아프리카 등 낙후된 나라에 돈을 직접 주는 것보다는 병아리와 부화기를 지원해 자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북한과 교류가 정상화된다면 양돈산업을 전수하고 싶어요. 돼지 키우는 기술과 인력을 지원할 경우 북한의 식량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북제재가 해제돼 북한과 교류가 시작되면 양돈기술과 병아리 등을 지원해 주민들의 자립을 돕고 싶다. 농장은 별도로 지역 푸드마켓에 매월 100만원 정도의 축산물을 기부하고 있다.

 

그는 돼지문화원과 농장을 국내 6차 산업의 표준 모델로 성장시키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비록 정부 지원이 미흡할지라도 귀농·귀촌의 귀감이 되고 2세 경영의 우수사례로 농장을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했다. 종돈을 수출산업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돼지문화원이 한국형 6차 산업의 모델이 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벤치마킹 사례로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박연직 선임기자 repo21@segye.com

 

장성훈은…

 

△1962년 강원 양구 출생 △강원대 낙농학과 △금보육종·돼지문화원 대표 △신지식농업인 선정 △2019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 선정 △2016년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대한민국참봉사대상 수상 △동탑산업훈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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