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올해도 수고하셨어요, 내년에도 해피 라이프!/순천 와온해변에서 떠나보내는 2019년/해를 향한 암자 여수 향일함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니 첫 일출 보며 소망 빌어보자

1월 초. 굳게 약속했다. 올해는 영어회화를 마스터하리라. 지하철을 타고 오고 가며 틈이 날 때마다 이어폰을 끼고 아주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외국인 선생을 어렵게 구해 ‘고액 과외’도 시도해 봤다. 하지만 한두 달 했을까. 몸이 두개라도 모자란 바쁜 일상에 공부는 뒷전으로 점점 밀렸다. 결국 시간과 돈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줬고 그렇게 굳은 다짐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런 1년이 어느덧 저물어 간다. 이때쯤이면 ‘올해도 나와의 약속을 제대로 못 지켰네’라며 자괴감에 빠지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좋은 기운을 얻기 위해 새해 첫 태양을 맞으러 길을 나선다.

#남도로 떠나는 새해 첫 여행
해돋이 명소는 동해에 몰려 있다. 새해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태양이 더 행운을 가져다줄 것 같아서 많은 이들이 동해로 떠난다. 정동진, 추암촛대바위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새해 첫날 동해의 아침해를 보려면 사나운 추위와 싸워야 한다. 동장군이 싫은 이들에게 선택지는 그래도 포근한 남도다. 지는 해를 보면서 한 해를 돌아보고 떠오르는 힘찬 태양과 함께 한 해를 열 수 있다면 금상첨화. 그런 곳이 있다. 순천 와온해변과 여수 향일암이다. 승용차로 1시간 남짓 거리에 있고 갈대숲 무성한 순천만 습지와 국가정원 등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성해 알찬 새해 첫 여행을 꾸릴 수 있다.



해돋이를 보려고 보통 12월 31일에 1박2일로 떠나는 이들이 많다. 순천과 여수를 묶는 겨울여행은 순천만 습지에서 시작한다. 습지에 도착하니 남도의 따듯한 햇살과 푸른 하늘이 반긴다. 무진교를 건너면 가슴이 탁 트이는 풍경이 반기는데 양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갈대군락이 장관이다. 너무나 바빠서 올 가을에 갈대와 억새 구경을 놓친 여행자들은 겨울 갈대의 매력에 푹 빠진 듯 얼굴에 환한 웃음이 가득이다.


전라남도 순천시, 고흥군, 여수시로 둘러싸인 순천만 갯벌 면적은 22.6㎢에 달한다. 간조시에 드러나는 갯벌 면적만 따져도 12㎢에 달할 정도로 광활하다. 이곳에 5.4㎢에 달하는 거대한 갈대군락이 동천과 이사천의 합류지점에서 순천만 갯벌 앞쪽까지 펼쳐져 있다. 서천 신성리 갈대밭처럼 갈대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갈대 군락 사이로 데크길이 잘 조성돼 갈대숲을 거니는 느낌이다. 길은 다양한 갈래로 나뉘었다 합쳐지고 오두막에서는 한가롭게 힐링을 즐길 수 있다.


순천만은 겨울에 진가를 드러낸다. ‘겨울손님’ 철새 덕분이다. 흑두루미, 재두르미, 노랑부리저어해, 큰고니, 검은머리물떼새 등 국제적으로 보호되는 철새 희귀종들이 이맘때면 순천만에 둥지를 튼다. 모두 230여종으로 우리나라 전체 조류의 절반이나 된다. 무진교를 건너기 전 오른쪽 선착장에서 생태체험선을 타면 된다. 순천만 습지를 구석구석 도는데 철새떼를 코앞에서 보는 재미가 크다.



세계 5대 연안습지로 2006년 람사르 습지 협약에 등록된 순천만 습지를 제대로 즐기려면 용산전망대를 올라야 한다. 언덕길이 다소 힘들어 대부분 습지만 둘러보는데 용산에 오르면 드론에서 촬영한 듯한 순천만 습지의 빼어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갈대군락 끝까지 들어가면 용산 가는 길이 나온다. 중간에 두 갈래로 나뉘는데 왼쪽은 ‘명상의 길’, 오른쪽은 ‘다리아픈 길’이다. 왼쪽 길을 추천한다. 오솔길을 천천히 걸으며 한 해를 돌아보기 좋다. 중간 전망대를 지나 정상에 오르면 발밑으로 수련을 닮은 아름다운 습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와온해변에서 떠나보내는 2019년
인근에는 순천만 국가정원이 기다린다. 랜드마크인 순천호수공원을 시작으로 전 세계 국가를 테마로 조성된 정원을 둘러보며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호수공원은 영국의 저명한 호수정원 디자이너 찰스 젱스가 직접 설계했는데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본 순천의 지형을 그대로 축소해 담았다고 한다. 나사못처럼 나선형으로 디자인한 6개의 언덕이 인상적이다. 정원은 습지의 희망, 초록의 숨결 등 4가지 테마로 꾸며졌다. 네널란드, 멕시코, 중국 등 11개 나라의 정원을 조성했는데 나라별 특징을 잘 살렸다.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네덜란드 정원. 예쁜 풍차를 배경으로 근사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곳을 지나면 연인들에게 인기 높은 핑크뮬리와 메타세쿼이아길이 나온다.



여유롭게 풍경을 즐기며 한 해를 돌아봤다면 이제 2019년을 떠나보내야 할 시간. 승용차로 20분 거리에 요즘 뜨는 해넘이 명소로 입소문난 와온해변이 기다린다. 순천시 상내리 와온마을의 작은 해변으로 굴, 꼬막 등을 채취해 저녁을 직접 만들어 먹는 투어로 먼저 알려진 곳이다. 백사장을 삽으로 뜨면 갯가재와 비슷하게 생긴 쏙이 2∼3마리씩 나온다. 밤에는 낙지가 둥둥 떠다녀 잠자리채로 뜨면 하룻밤에 20∼30마리도 잡을 수 있어 강태공들이 몰린다고 한다. 와온해변 앞바다는 짱뚱어, 숭어, 맛조개 등 수산자원이 풍부한데 특히 새꼬막 생산지로 유명하다. 꼬막은 10월에서 5월에 제철이라 요즘 맛나는 꼬막을 즐길 수 있다. 동쪽으로 여수와 남서쪽으로 고흥반도와 순천만을 접해 요즘은 일몰을 감상하려는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다. 조용하고 아담한 해변이라 서서히 사라지는 낙조를 즐기며 아쉽지만 2019년을 놓아 줄 수 있다.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니 향일암으로 가자
향일암. 말 그대로 ‘해를 향하는 암자’다. 순천에서 가까운 여수시 돌산도 끝 금오산 자락에 있는데, 동쪽으로 자리 잡아 새해 첫해를 보려는 많은 여행자들로 1월 1일 새벽이면 북적댄다. 두 갈래 길이 있는데 오를 때는 계단을, 내려갈 때는 평지를 추천한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만나는 3명의 아기 돌부처 때문이다. 모두 귀엽게 미소짓고 있는데 첫째는 입을 가리고, 둘째는 귀를 막고, 셋째는 눈을 가리고 있다. 각각 불언(不言), 불문(不聞), 불견(不見)이라는 제목과 함께 법구경의 문장들이 적혀 있다. 나쁜 말을 하지 말라. 험한 말은 필경에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 악담은 돌고 돌아 고통을 몰고 끝내는 나에게 되돌아오니 항상 옳은 말을 배워 익혀야 하리(불언). 산 위의 큰 바위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비방과 칭찬의 소리에도 평정을 잃지 않는다(불문). 남의 잘못을 보려 힘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 하지 말라.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살펴야 하리(불견).

아기 부처는 귀엽지만 법구경의 문장은 깊은 울림을 주며 가슴에 팍팍 꽂힌다. 올 한 해 동안 나는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 다른 이의 장점보다 단점을 더 보려 집착하지 않았을까.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년에는 더 나은 삶을 살자고. 많은 가르침을 주니 향일암은 새해 첫 태양을 맞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다소 가파른 길을 따라 향일암에 올라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한다. 수평선으로 또렷하게 떠오르는 태양이 장관이다.

향일암 근처에 이르면 집채만한 바위 2개의 틈으로 통과해야 한다. 이런 바위동굴과 바위틈이 7개가 있는데 그곳을 모두 통과하면 소원 중 한 가지는 반드시 이뤄진단다. 여행자들은 대웅전과 용왕전 사이 약수터 옆 바위와 관음전 뒤편 큰 바위에 동전을 붙이거나 바다로 향해 무리지어 있는 거북의 머리와 등에 동전을 올려놓으면서 소원을 빈다. 향일암은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4대 관음성지.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관세음보살의 자비로 소원을 성취하게 된다니 작은 소원을 하나 빌어본다.
순천·여수=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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