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한일 갈등으로 동북아 정세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중국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에서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렸지만, 중국과 일본 측의 외교 결례로 논란을 빚고 있다. 중국 측은 문재인 대통령이 회담 중 언급하지 않은 내용을 언론을 통해 발표했고, 일본은 문 대통령 발언을 끊고 기자단을 밖으로 내보냈다.

◆일본, 文 대통령 발언 끊고 기자단 퇴장 요구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6분(현지시각·한국시각 오후 3시6분)부터 45분 동안 중국 청두의 샹그릴라 호텔에서 아베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갖고 수출규제 조치 복원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여부, 한반도 정세와 관련된 논의를 했다. 강제징용 판결 이후 한일 갈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양국 관계 개선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되던 회담이었다.
문제는 문 대통령의 모두 발언 도중 벌어졌다. 문 대통령이 이날 모두 발언을 통해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교역과 인적 교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상생 번영의 동반자"라며 "잠시 불편함이 있어도 결코 멀어질 수 없는 사이"라고 말했을 때, 회담장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일본 측이 한국 풀(POOL) 기자의 퇴장을 요구한 것이다. 결국 문 대통령은 발언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 취재진의 카메라에 포착된 문 대통령의 표정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경제, 문화, 인적 교류를 비롯한 협력을"이라고 발언을 계속했지만, 취재진의 퇴장으로 이후 정확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한일 정상회담 때 상대국 정상의 모두 발언이 끝나기 전에 퇴장을 요구한 것은 최초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청와대는 두 정상 모두 앞선 한중일 정상 환영오찬 직후 양자 정상회담을 갖느라 시작 시간이 5분 가량 늦어졌고, 애초 모두 발언에 할당된 10분이 초과하자 칼같이 취재진의 퇴장을 요구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중국, 文 대통령 미발언을 언론 통해 발표
앞서 진행된 한중 회담에서서도 중국 측 외교 결례 문제가 불거졌다. 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3일 6번째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등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갈등 해소 방안 등을 집중 논의했다.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문 대통령이 청두로 가기 전 베이징(北京)에 들러 시 주석과 정상회담 및 업무 오찬을 가진 것이다.
문제는 홍콩과 신장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발언했는지를 놓고 24일 中·日 언론과 청와대가 상반된 의견을 내놓으면서 불거졌다. 중국 언론과 일본 언론은 전날 문 대통령이 홍콩이나 신장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매체 환구망(環球網)과 봉황망(鳳凰網)이 지난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홍콩이나 신장 문제는 중국 내정”이라고 발언했다며 이를 제목으로 뽑아 보도했다. 이 보도에 대해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이 표현은 사실에 부합하고 그는 기본적인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반응, ‘내정’ 발언 보도가 사실이라며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들도 이날 중국 매체의 발표를 그대로 인용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문 대통령이 홍콩 시위 및 신장 자치구 위구르족 문제에 대해 ‘중국의 내정’이라고 말하며 문제시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 신문도 “한국 측은 모두 중국의 내정 문제라는 인식을 보였다”고 전했다.
반면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중국 측 발표와 다르다고 해명했다. 청와대 측은 기자들의 질문에 “시 주석이 홍콩·신장 문제에 대해 ‘이 문제들은 중국의 내정 문제’라고 설명했고,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시 주석의 언급을 잘 들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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