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통상당국 간 수출관리 정책대화가 그제 10시간 넘게 이어졌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한다. 정부는 수개월 안에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하라고 요구했지만 일본은 한국의 무역 관련 법·제도와 심사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물고 늘어졌다. 무기로 전용 가능한 전략물자의 수출을 관리하는 ‘캐치올’ 규제를 정비하라는 억지주장도 되풀이했다고 한다. 이런 식이면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복귀까지 수년이 걸린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전략물자 통제에 관한 한 한국이 우등국가임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가지야마 히로시 일 경제산업상은 어제 수출규제 철회에 대해 “아직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회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양국은 가까운 시일 내에 서울에서 다시 정책대화를 열기로 했다.
화급한 일은 경제보복의 도화선인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판결 문제를 푸는 것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안한 ‘1+1+α’안이 그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안은 양국 기업(1+1)과 국민(α)이 자발적으로 낸 기부금과 성금으로 ‘기억·화해·미래재단’을 설립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또는 위로금을 지급하는 게 핵심이다.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문희상 법안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53.5%로 반대 42.1%를 웃돌았다. 성금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도 54.3%에 달했다. 문 의장이 오늘 의원 10여명과 함께 법안을 공동발의한다고 하니 국회는 서둘러 심의작업에 나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피해자와 유족을 설득하는 일이 중요하다. 유족과 시민단체는 기업과 시민의 돈으로 일본 정부에 면죄부만 줄 것이라고 반발한다. 정부는 일본의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받아내고 유족들의 양해를 얻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본은 과거사를 직시하고 수출규제 문제에 전향적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경제보복 조치가 자국 경제에 더 심각한 타격을 가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한·일 갈등을 푸는 열쇠는 한·일 정상의 손안에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24일 중국 청두에서 1년3개월 만에 회담을 한다. 이 자리에서 동북아 평화·번영을 위해 신뢰를 복원하고 통 큰 합의를 이루기 바란다. 실사구시와 역지사지의 지혜를 발휘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정부는 정상회담 전까지 주도면밀한 사전조율 작업에 외교적 역량을 모아 상생의 길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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