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노트] 뇌는 솜씨 좋은 편집자… 머릿속 기억 어디까지 진짜일까

올해 방영된 TV 아침드라마 등장인물 가운데, 자신의 신체가 썩고 있다고 믿는 정신질환자가 있었다. 이 환자가 앓고 있다는 엘베르증후군은 드라마에서 지어낸 병명이지만,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질환은 실제 정신질환의 일종인 코타르증후군이다. 일명 ‘걷는 시체 증후군’이라 불린다. 이 병을 앓는 환자는 자신이 죽었거나, 가장 가깝게 지내던 사람을 포함해 주위 모든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믿는다. 코타르증후군은 조현병이나 양극성 기분장애 이외에, 뇌의 관자엽과 마루엽의 경계 부위를 다쳤을 때도 생긴다. 관자엽과 마루엽의 경계 부위는 과도한 자극을 받으면 무언가 기이한 존재가 있는 듯한 느낌이 생길 수 있다. 이를 테면 유령이나 귀신, 혹은 또 다른 존재 말이다.

이수정 다산북스 다산사이언스 팀장

하루 종일 허공에 대고 중얼중얼 대화를 나누는 망상형 조현병 환자들은 속으로만 말하는 소리, 즉 비발화성 언어를 구분하는 뇌기능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보통 사람들은 성대를 울리지 않는 마음의 소리도 자신의 목소리라는 것을 잘 알지만, 조현병 환자들은 그렇지 않다. 다소 무섭기까지 한 이들의 증상도 알고 보면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사람들에게 들리게 말하는 것뿐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87세 바일러씨는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었다. 그는 혼자 살고 있었지만, 몇 주 전부터 그의 집에 낯선 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는 곰 한 마리가 부엌을 어슬렁거린다. 거실에서 풀을 뜯는 소들도 종종 본다. 소들은 거실 카펫에 자라난 풀을 조용히 뜯어 먹는다.” 바일러씨의 이야기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앞을 못 보는 그가 환각 증상을 보이는 것이 분명했으므로, 그가 치매에 걸린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환각을 본다고 하면 흔히 치매나 조현병, 불법 약물 중독을 먼저 떠올리지만, 바일러씨의 증상은 찰스보닛증후군 환자들이 보이는 증상과 유사하다. 찰스보닛증후군은 아예 앞을 보지 못하거나 부분적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생기는데, 더 이상 시각신호를 받지 못하게 된 뇌가 외부의 시각신호를 대신해 다른 자극을 내보내는 것이다.

찰스보닛증후군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 뇌는 보이지 않는 것과 보여야 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금세 메꾸는 성향이 있다. 뇌는 솜씨 좋은 편집자이자 거짓말쟁이가 될 소질을 타고난 존재다. 뇌가 항상 하는 일은, 영화 편집자처럼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카메라 영상과 오디오 녹음을 수집하고 편집하는 것이다.

엘리에저 J. 스턴버그 / 조성숙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만8000원

그렇다면 뇌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위해 어느 정도의 선을 넘을까? 주요 신경심리학 이론 가운데 하나에 따르면 거짓말, 즉 말짓기증은 기억의 조각이 사라지거나 왜곡되고 자아의 존재감과 안정성이 위협받을 때 생긴다. 뇌의 무의식계는 날조한 기억으로 구멍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다양한 기억의 파편을 모아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로 엮는다. 뇌는 어떤 식으로든 통일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기억은 바뀔 수 있고 인공적으로 이식될 수 있으며, 집단에게도 전염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억은 어느 순간 사실로 자리 잡는다. 우리가 가짜뉴스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예일대학교병원의 신경과 의사이자 촉망받는 과학저술가인 엘리에저 스턴버그가 쓴 이 책을 만드는 내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흥밋거리 이야기로 읽는 즐거움을 느꼈다. 전쟁을 겪지도 않은 세대가 왜 불안에 시달리는지, 가짜뉴스가 어떻게 전염되는지, 무엇보다도 우리가 왜 인간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생각을 덧대보는 시간이었으며 나와 세상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서른도 되기 전에 상당한 분량(450여쪽)의 멋진 책을 써낸 저자의 천재성에 감탄하면서, 이 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어 몹시 기쁘다.

이수정 다산북스 다산사이언스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