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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내 삶의 흔적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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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09 23:21:14 수정 : 2019-12-09 23: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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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쑥 커가는 아이를 위해 이사를 하기로 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쯤이면 아이와 새 집에서 놀고 있을 거다. 물론 그날을 위해서는 여러 현실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중 하나가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부동산에 내놓는 것이다. 그러면 관심 있는 여러 사람들이 집을 보기 위해 찾아온다. 수년 동안 손에 꼽을 정도였던 낯선 이들의 방문이 매일 이어진다. 요즘 우리 가족의 일상이다.

다만, 이러다 보니 낯선 이들에게 나와 우리 가족의 사는 모습이 매일 노출된다. 보여주려 한 것은 ‘집’이지만 보이는 것은 내 삶의 모습이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남들이 사는 모습을 보는 게 어떻냐고? 누구나 소소한 삶의 부끄러운 모습은 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아파트 베란다에 방치돼 있는 운동기구들은 어떨까. 한때 굳은 결심을 하고 돈을 털어 사놓았지만 지금은 삶의 게으름을 상징하는 흔적으로 남아 있다. 우리집을 찾았던 이들은 이 모습을 보며 집주인의 게으름을 상상하고 피식 웃었을 것이다.

서필웅 문화체육부 기자

운동기구야 눈에 안 띄게 숨겨놓으면 그만이지만 지우기 어려운 흔적도 있다. 이를테면 퇴근해 귀가하면 늘 등 머리를 대고 누워 있어 색이 바래버린 TV 바로 맞은편 벽지를 예로 들 수 있다. ‘벽지 색이 바랠 정도로 어지간히 TV를 많이 보는구나’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이 밖에도 책장에 두서없이 꽂혀 있는 책들, 주방의 그릇들, 화장실 타일의 얼룩까지 정리한다고 해도 도저히 정리가 안 되고, 감추려 해도 도저히 감출 수 없는 흔적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물론 낯선 이들에게 집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삶 속에 파묻혀 까맣게 잊고 있었던 흔적들이다.

덕분에 집에 남아 있는 흔적뿐 아니라 삶의 도처에 남아 있는 내 흔적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이제는 일상이 돼 버린 인터넷에 나는 어떤 발자취들을 남겨 왔을까. 어딘가에 남겨 놓은 수많은 댓글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삶을 많은 이들에게 은연중 보여주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진다. 한번 보내 놓으면 내 손을 완전히 떠나 다른 누군가의 소유가 되는 문자나 모바일 메신저 속 문구들도 마찬가지다. 아예 내가 어찌할 수도 없는 이 문장들이 삶의 모습들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아주 어린 시절 서울에도 비포장 도로가 흔했을 때는 비만 오면 길에 발자국이 가득했다. 그때는 발자국만 보면 옆집 친구가 나 몰래 어느 집에 놀러갔는지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모든 도로가 포장돼 발자국은 남지 않지만 대신 수없이 많은 흔적이 남는 시대다. 너무 흔적이 많이 남아 숨길 수도 없을 정도. 그러다 보니 어느새 무감각해졌었다.

이사준비라는 특별한 이벤트 덕분에 내 삶의 흔적이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비로소 고민하게 된 요즘이다. 일단 고민해 본 결과 부끄럽고 창피한 흔적은 있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만한 흔적들은 없는 듯 하긴 하다. 하지만 내 흔적들을 직면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내 생활 속, 인터넷 속, 휴대전화 속 내 흔적들이 타인에게 부끄럽게 다가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만 가져본다. 그러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금 더 고민하게 됐다.

 

서필웅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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