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님이 정말 1년 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4일 오후 6시쯤 서울 용산구 용산고 앞에서 만난 오산고 3학년생 송민근(18)군은 “이제 부모님과 식사를 하러 간다”며 이렇게 말했다. 시험을 마치고 고사장을 나선 송군은 학교 정문 앞에서 기다리던 어머니를 보자마자 끌어안으면서 감사 인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송군의 어머니는 “아이가 지금까지 정말 혼자 다 준비해왔다. 아들이 앞으로 자신이 정말 원하는 삶을 살면 좋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날 오후 5시50분 5교시를 끝으로 수능이 종료되면서 고사장 앞으로 쏟아져 나온 수험생들은 제각각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 그간의 감회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오산고 3학년생 윤선구(18)군은 “오랫동안 준비했던 수능이 끝나니 기분이 묘하다”며 “다 끝나면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은데, 무엇보다 가족과 동해안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자녀 2명이 함께 수능을 봤다는 이순영(50)씨는 “아이들을 아침에 고사장에 데려다주고 끝날 때까지 조계사에서 시험 잘 보길 기원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수험생 일부는 입실 완료시각 즈음해 뛰어오거나 고사장을 찾지 못해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오전 8시5분쯤 용산고 앞에선 한 학생이 대기 중인 경찰에 “학교를 잘못 온 거 같다”며 “태워줄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원래 시험장인 용산공고와 용산고를 착각한 것이다. 시험장 입실 완료시간인 오전 8시10분을 조금 지난 시각 이화외고 앞으로 경찰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와 정문과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 현관 앞에 학생을 내려주는 모습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정문 일부가 차에 부딪혀 파손되기도 했다. 서울경찰청 소속 교통경찰은 수험생 편의를 위해 125개소에 순찰차 등 417대를 배치했다. 이날 수험생 관련 112신고 접수는 총 411건이 접수됐고, 경찰차로 고사장에 태워준 건 98건이었다.
대전에서 대구로 와 수능을 치르는 한 수험생은 KTX 열차를 놓쳐 다음 열차를 탔다가 시험을 치르기 어렵다고 판단해 대구교육청에 연락했다. 대구수능본부와 코레일, 경찰은 A군이 원래 가기로 한 시험장이 B고였으나 시간이 촉박해지자 동대구역에서 가장 가까운 시험장인 C고에서 시험을 치르도록 했다.
경남에선 고사장 입실 마감시간(오전 8시10분) 직전 수험생 이송을 요청하는 112 신고가 총 23건이나 접수됐다. 신고자들은 “수험생인데 고사장이 어딘지 모르겠다”라거나 “늦을 것 같으니 태워 달라”고 요청했다. 전북 익산에선 오전 8시5분쯤 익산 원광고에서 시험을 봐야 할 수험생이 남성고로 잘못 입실했다. 입실 시간이 훌쩍 지난 뒤에야 이를 알게 된 수험생은 전북교육청에 도움을 요청해 남성고에서 시험을 치렀다. 같은 시각 전주에서도 고사장을 착각해 전북대 사대부고로 간 수험생이 경찰의 도움으로 전주대 사대부고에서 시험을 치렀다. 전남에서도 친구와 신분증이 뒤바뀌었다는 수험생의 요청을 받고 경찰이 신분증을 찾아 시험 시작 전에 전달했다.
뜻밖의 사고로 수험생이 병원으로 실려 가는 일도 발생했다. 강원 춘천의 수험생 A양은 지난 13일 밤 맹장염으로 밤사이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A양은 도교육청과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 입원한 병원 응급실에서 시험을 치렀다. 제주의 한 수험생도 시험 시작 전 저혈당 쇼크로 인해 병원으로 이송돼 시험을 치렀다.
경기 남양주 한 아파트에서는 고사장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려던 B양이 집 현관문이 열리지 않자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광주 남구 진월동 한 아파트에선 수험생과 어머니가 엘리베이터 16층에 갇혀 나오지 못하다가 신고로 출동한 소방관이 구조한 덕분에 무사히 시험을 볼 수 있었다. 경기 부천의 한 시험장에서는 오전 9시15분쯤 수능 감독을 하던 교사가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2년 전 규모 5.4 지진이 난 포항에선 시험장 12곳에 지진계를 설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이날 ‘수능 한파’를 실감케 하는 강추위 속에서도 고사장에 들어서는 수험생을 응원하는 후배들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고 앞에선 대영고, 선유고, 장원고, 영신고 등 학생들이 학생회를 중심으로 삼삼오오 나와 “포기할 ‘수능’ 없지”, “긴장하면 ‘안대영’” 등 유머 있는 손팻말을 들고 응원했다.
김승환·이강진 기자, 전국종합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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