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민주화 시위 둘러싼 고려대 대자보 갈등

홍콩 시위대 향해 총 겨눈 경찰. 홍콩 AP=연합뉴스

‘대자보 훼손 행위에 대해 엄중히 경고합니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12일 성북구 안암캠퍼스 내 게시판에 이런 제목으로 붙인 대자보를 통해 “지난 11일 오후 4시·8시·10시쯤 정경대 후문 게시판에 부착된 ‘홍콩 항쟁에 지지를!’이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총 세 차례에 걸쳐 의도적으로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며 “대자보 훼손이라는, 폭력적이고 억압적 방법으로 학내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저해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페이지 ‘정대후문 게시판’ 캡처

페이스북 페이지 ‘정대후문 게시판’ 캡처

훼손된 대자보는 홍콩 경찰이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있으며 홍콩 시위대의 요구는 정당하다는 주장 등이 담겼다. 이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중국인 한둘이 화난 목소리로 (말을 하며) 대자보를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걸 봤다”는 제보도 나왔지만, 실제 중국 국적 학생이 훼손한 건지는 아직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대학가에서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확산하는 가운데 홍콩 지지 여부를 둘러싼 갈등 또한 잇따르는 모습이다.

실제 이날 고려대 안암캠퍼스 내 게시판에는 홍콩 민주화 시위 찬반 주장을 담은 대자보가 잇따라 게재됐다. ‘고려대 중국 유학생모임’이라 밝힌 한 단체는 ‘홍콩 The Angry Young 행위가 도대체 민주인가, 폭행인가’란 제목의 대자보를 통해 ‘홍콩 시위가 불법이며 시위 참가자 대부분이 대학생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 또한 반박 대자보를 게재해 ‘진정한 문제는 중국 정부의 폭력이며 시위 참가자가 대학생인지 여부는 시위 지지 여부에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갈등은 고려대만의 상황이 아니다. 전날 서울대 학내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기 위해 침묵 행진을 진행했던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은 이날 서울대 내 ‘레넌 벽’ 설치 사실을 알리면서 “혹시 훼손되지 않는지 지켜봐달라. 서울대 재학생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중국 유학생에 의한 훼손 우려가 반영된 공지다. 레넌 벽은 홍콩 시위 지지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공간으로, 1980년대 체코에서 공산주의 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학생들이 벽에 비틀즈 멤버 존 레넌의 가사 등을 적은 데서 유래했다.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회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두산인문관 해방터 인근에서 홍콩 정부의 국가폭력을 규탄하며 침묵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

앞서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 사이 연세대에서 ‘홍콩을 지지하는 연세대 한국인 대학생들’이 설치한 홍콩 민주화 지지 현수막이 무단 철거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학 측이 해당 현수막을 철거하지 않았다고 밝힌 가운데 중국인 추정 인물들이 현수막을 떼어가는 모습을 봤다는 목격담이 당시 나온 바 있다.

김승환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