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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로 문 여는 일 비일비재”… 감정노동 시달리는 방문서비스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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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1-06 15:15:15 수정 : 2019-11-06 15: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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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스 검침을 위해 고객 집을 방문하면 사각팬티만 입고 있거나 나체로 문을 열어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도시가스 안전점검원으로 일하고 있는 공순옥씨는 점검원들이 현장에서 경험하는 성희롱·성폭행, 폭언 실태에 대해 증언했다. 공씨는 “직장에 다니는 고객은 오후 10시, 자정에 오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며 “고객이 ‘너네 쓸데없이 왜 오냐. 돈 낭비하고 돌아다닌다’고 타박하고, 갑자기 뒤에서 끌어안고 엉덩이를 만지는 등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해 수치심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공씨는 이어 “말 못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정신적 상처가 크지만, 이같은 문제를 털어놓을 곳이 없다”고 덧붙였다.

 

개별 가구를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문서비스노동자들이 폭언·폭행, 성희롱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등 과도한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동도시가스 여성 안전점검원들은 지난 5월 20일부터 성폭력 안전대책을 요구하며 울산시청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보건의료노조·서비스연맹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공개된 ‘노동자 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2.2%가 고객에게 모욕적인 비난이나 고함, 욕설 등을 들었다고 응답했다. 이 중 11.1%가 ‘매우 자주 있다’고 답해 방문서비스노동자의 인권침해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실태조사는 설치·수리 현장 기사와 재가요양보호사, 가스 점검·검침원, 학습지 교사 등 방문 서비스노동자 747명을 대상으로 지난 9월 11일부터 2주간 온라인을 통해 실시됐다.

 

‘고객으로부터 원치 않는 성적인 신체 접촉이나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35.1%였다. 고객에게 위협이나 괴롭힘을 당한 응답자는 67.2%에 달했다. 또 고객에게 신체적인 폭행을 당한 경우도 15.1%로 집계됐다. 

 

 

업종별로 보면 가스점검·검침원이 성희롱을 당한 비율(74.5%)이 가장 높았고 설치·수리 현장기사 95.6%가 고객으로 모욕적인 비난, 고함, 욕설에 노출되는 등 대부분이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설치·수리 현장기사인 이승훈씨는 “제품을 수리하거나 설치를 하면 고객 수백명에게 저희 전화번호가 그대로 공개된다.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휴일이나 밤늦은 시간에 전화를 해 ‘당장 고쳐놓으라’고 폭언을 한다”고 했다. 

 

노동자 대부분은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 채 개인적으로 참고 넘기는 것으로 확인됐다. ‘동료나 가족에게 털어놓고 해소한다’(40.2%)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참고 넘어간다’(37.5%)가 뒤를 이었다. ‘회사에 알린다’는 응답은 9.5%에 그쳤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최민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가해자인 고객이 충분한 처벌이나 제재를 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상 회사에서 이를 회피하고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노동자를 위험하게 하는 조건을 바꾸기 위해 위험이 있을 경우 노동자 스스로 업무를 그만둘 수 있는 ‘작업중지권’ 제도화, ‘2인 1조 작업’ 정착, 개인정보 노출을 막는 등 사업주 역할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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