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송영애의 영화이야기] 내 책상 서랍 속의 영화들

관련이슈 송영애의 영화이야기

입력 : 2019-11-02 14:00:00 수정 : 2019-11-01 21:54:09

인쇄 메일 url 공유 - +

'나만의 영화 추억하기'

지난 10월27일은 우리나라 ‘영화의 날’이자 한국영화가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최초의 한국영화로 평가받는 영화 ‘의리적 구토’(감독 김도산)가 1919년 10월27일 개봉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날이 ‘영화의 날’이 지정되기도 했다.

 

영화 ‘의리적 구토’(감독 김도산, 1919) 신문광고. 1919년 10월26일자 매일신보.

 

일제강점기였고, 연극과 혼합된 형태이긴 했지만, 한국인이 제작, 감독, 출연하여 한국인의 이야기를 담아내었고, 단성사에서 개봉했던 영화 ‘의리적 구토’는 안타깝게도 필름이 남아있지 않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후 한국영화 제작의 역사는 10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학술대회와 행사, 프로그램들이 작년부터 진행 중인데, 이미 학술대회, 기념영화 100편 제작 등 관련 소식을 전한 적도 있다. 

 

오늘은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을 개인적으로 기념하는 차원으로 내 기억 속 옛 영화들을 몇 편 떠올려볼까 한다. 비록 영화 관람의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내 인생에 영화가 어떤 의미인지도 생각해볼 겸 말이다.  

 

내가 본 영화들에 대한 기억은 영화관과 함께한다. 아직 비디오 시대가 오기 전이었으니, 당시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영화관을 가거나 집에서 흑백 TV 앞에서 영화 방영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당연히 화면이 크고 컬러로 볼 수 있는 영화관 관람을 선호했었고, 사실 시내 영화관을 가는 건 단순히 영화 한 편을 보러 가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영화 관람 전후로 대개 외식도 하게 되는 가족 나들이였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감독 로버트 와이즈, 1965) 포스터. 네이버영화

 

내가 가장 오래 전에 본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감독 로버트 와이즈, 1965)으로 기억한다. 이 영화는 1969년 국내 개봉 이후 여러 차례 재개봉됐는데, 나는 재개봉 때 본 것으로 짐작된다. 영화관 꽤 앞쪽에 앉아 있었던 것 같고, 빠르게 사라지는 자막을 제대로 읽는 게 힘들었던 기억과 몇몇 인물들의 얼굴 클로즈업이 기억난다. 재밌게 봤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고, 대체로 어리둥절 당황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영화 ‘초대받은 사람들’(감독 최하원, 1981) 포스터. KMDb

 

그 다음으로 기억하는 오래전 영화 ‘초대받은 사람들’(감독 최하원, 1981)은 단체 관람으로 봤다.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를 다룬 영화로 당시에 내용은 잘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고문과 처형 장면들이 너무나 끔찍했던 기억은 선명하다. 최근 KMDb에서 VOD로 이 영화를 다시 봤는데, ‘천주교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미사로 시작하고 끝나는 액자 식 구성으로 1784년 신유박해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개봉 당시 꽤 화제가 됐었다.  

 

영화 ‘E.T’(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1982) 포스터. 네이버영화

 

그 다음은 영화는 ‘E.T’(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1982)다. 우리나라에는 1984년 개봉됐다. 처음엔 가족들과 함께 봤고, 이후 친구와 함께 재관람을 했다. 내 인생 첫 ‘N차 관람 영화’(여러 번 본 영화)였는데, 입장권 값도 모아야 했고, 시내 영화관 까지 갔다 오는 허락을 받는 조건이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었는데, 동행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E.T’는 꽤 오랫동안 말하자면 꿈과 환상을 준 영화였다. 왠지 내 주변에도 어딘 가에도 외계인이 있을 것 같았고, 외계인을 만난다면 꼭 친구가 되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이마도 SF영화를 좋아하는 내 영화 취향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영화 ‘터미네이터’(감독 제임스 캐머런, 1984) 포스터. 네이버영화

 

그리고 또 한 편의 단체 관람 영화가 기억난다. ‘터미네이터’(감독 제임스 캐머런, 1984)는 학교에서 시험을 끝내고 단체관람을 갔다. 친구들과 왁자지껄 영화를 관람했던 기억도 나는데, SF영화에 대한 내 취향을 강화시켜 준 것 같다. 시간여행에 대한 호기심도 증폭됐고,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도 커졌었다. 물론 특정 브랜드의 운동화에도 혹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내 영화 관람 인생 초반에 한국영화는 단 한 편뿐이다. 당시 한국영화의 위상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1970, 80년대를 통해 한국영화 관객은 계속 감소하고 있었다. 그나마 히트작은 대부분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였다. 1970년대 시리즈로 제작돼 큰 인기를 얻었던 ‘로버트 태권 V’(감독 김청기, 1976)를 접하기엔 너무 어렸었다.  

 

옛 영화들을 떠올리다 보니, 작품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던 친구들도, 영화를 보고 난 후 운동화 사러 갔던 기억도 소환됐다.

 

그렇게 많은 영화들을 보며 자란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기억들이 함께 떠오르는 것을 보니 어린 나에게 영화 관람은 기억할 만한 멋진 경험이었나 보다. 

 

단체관람 시기를 지나왔고, SF영화 취향을 갖게 됐고, 점차 한국영화를 많이 보게 됐다.

 

영화는 여전히 내 최고의 취미이자, 세상과 사람을 좀 더 이해하게 해준 매체다. 영화가 담고 있는 세상의 사고방식을 찾아 비판하며 세상의 이면을 보게 되었고, 동시에 내가 몰랐던 일들을 간접 경험하고 공감하며 내가 아는 세상 자체도 더 커졌다.  

 

혹 기회가 된다면,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자신의 영화 관람 인생도 기념해 보시길 바란다. 자신이 봤던 영화들을 기억하며 영화와 함께 해온 내 삶을 추억하는 것은 분명 유쾌한 경험이 될 것이다.

 

송영애 서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해당 기사는 외부필진의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린 '상큼 발랄'
  • 아린 '상큼 발랄'
  • 강한나 '깜찍한 볼하트'
  • 지수 '시크한 매력'
  • 에스파 닝닝 '완벽한 비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