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10월31일 베니토 무솔리니가 39세로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 총리에 오른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검은 셔츠단’이라는 폭력집단으로 정권을 잡은 그는 21년 만에 몰락하고, 이탈리아 왕국도 3년 뒤 사라진다.
그러고 보면 1860년대에 독립전쟁의 영웅 주세페 가리발디가 거느린 의용군인 ‘붉은 셔츠단’이 이룩한 이탈리아 왕국은 가리발디를 흉내낸 검은 셔츠단으로 망한 셈이다.
무솔리니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물론 그것은 ‘위대한’ 인물이라는 말과는 다르다. 무솔리니가 대단하다는 것은 누구도 그의 정체를 규정할 수 없도록 변모를 거듭해서다. 그는 철학도 일관성도 없는 대신 임기응변식의 언변이 천재적이었다.
‘베니토 무솔리니’라는 이름부터 그랬다. 그 ‘베니토’는 멕시코의 사회주의적 혁명가 베니토 후아레스에서 따온 것이다. 대장장이였던 그의 아버지(알렉산드로)가 사회주의에 심취해 그런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이 훗날의 파시스트는 이름만이 아니라 실제로 사회주의자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무솔리니는 1911년 이탈리아가 리비아 침략전쟁을 벌이자 반전운동으로 투옥됨으로써 명성을 얻었고, 그 여세를 몰아 이듬해는 사회당 기관지 ‘아반티’의 편집장을 맡아 2년 만에 부수를 10배나 확장하는 등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가 연합국 편에 서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논조를 180도 바꿔 찬성했고, 사회당은 그를 내쫓았다. 그의 이런 표변은 사회주의를 무서워한 서구 자본가들의 돈줄이 극우파에 흘러들어 가서라는 것이 정평이다.
사실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검은 셔츠단을 진압할 수 있었으나 사회주의자들에 넌더리가 나 그의 집권을 허용했다는 것도 정설로 통한다. 그는 사회주의 덕을 보았으니 ‘베니토’라는 이름은 역설적으로 제값을 한 셈이었다.
양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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